효자묘는 지금도 진행형

강화나들길 9코스, '교동다을새' 길에서 만난 아버지

등록 2012.11.04 16:02수정 2012.11.0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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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이 입대를 할 날이 다가오는데도 친정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벌써 세 번째 겪는 일이니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것인가. 그래도 군대에 가는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지 친지들에게 인사를 다닌다. 그 조카가 이모인 나를 보러 강화도까지 찾아왔다.


조카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궁리를 하다가 '강화나들길'을 걷기로 했다. 강화의 자연과 사람을 두루 보여주는 데는 나들길만한 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강화나들길 9코스인 '교동다을새길'을 걸을 거라는 아는 이의 연락이 있었던 참이라 조카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a  뱃삯은 일인당 2300원이며 승용차를 가지고 갈 경우 요금은 차 한 대당  16000원입니다.

뱃삯은 일인당 2300원이며 승용차를 가지고 갈 경우 요금은 차 한 대당 16000원입니다. ⓒ 문희일


교동도는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약 십여 분간 가면 닿을 수 있는 작은 섬이다. 교동도의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에는 한국전쟁 때 난리를 피해 황해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교동은 황해도와 가까운 곳이다. 섬이지만 들이 넓어서 벼농사를 많이 하고 그 외 고추나 참깨, 그리고 고구마와 옥수수 같은 밭작물을 곁들여서 짓는다. 바다에서는 숭어와 망둥이 그리고 새우가 주로 잡히는데 요즘에는 김장용 새우를 잡는 배들이 바다에 떠 있는 걸 볼 수 있다.

조카와 함께 걷는 '교동다을새길'

교동도는 썰물이 들어서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때는 배가 다니지를 않는다. 예전에는 그럴 경우에도 물이 깊은 석모도 쪽으로 빙 둘러서 교동도로 가곤 했는데 지금은 물이 빠지면 배가 다니지를 않는다고 한다. 기름 값이 올라 채산성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이 택한 고육지책이리라. 그래서 교동도에 갈 때는 물때를 잘 살피고 가야 한다.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문화유산이나 풍광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러나 크고 작은 유적들이 곳곳에 널려있어 이야깃거리가 많은 섬이 바로 교동이다. 또 배를 타고 교동을 오가다보면 섬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흥취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강화도와 연결이 되는 다리가 완공되면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던져주는 풍경도 사라질 듯하다.


a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에 맛을 들인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함께 날아옵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에 맛을 들인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함께 날아옵니다. ⓒ 문희일


발전기 소리가 요란스레 울리는 배를 타고 교동으로 가자니 옛 생각이 난다. 십여 년 전에 남편은 교동에서 두어 해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남편을 따라 몇 번 와봤던 곳이라서 그런지 교동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배가 교동의 월선포 선착장에 도착하자 차와 사람들이 일제히 배에서 내린다. 배를 쫒아 날아오던 갈매기들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 버린다.


오늘 걸을 길은 '강화나들길' 9코스인 '교동다을새길'이다. '다을새'란 교동의 옛 이름인 '달을신'에서 따온 것인데, 교동의 주산(主山)인 화개산에서 내려다보는 섬의 모습이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것과 같으며 새가 하늘에 닿을 듯 하다고 해서 '달을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을새길'은 교동의 여러 유적지들과 화개산을 둘러서 가는 길인데 도중에 고려 때 유학자인 안향이 중국에서 공자의 초상을 모시고 와서 세운 교동향교를 볼 수 있다. 또 화개사와 연산군의 유배지 및 교동읍성 등도 둘러본다. 화개산에서는 북한의 연백평야가 눈 아래 펼쳐져 있으며 그 외 대룡리의 시장골목에 들어서면 오래된 건물들과 간판들이 지나간 옛 시절을 생각나게 해준다.

산 밑 동네의 감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주황빛으로 물이 들어 있고 길가의 수숫대는 가을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양 껑충하게 서 있다. 들깨 냄새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작대기로 깨를 털고 있는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시월의 양광(陽光) 아래 그 모든 것이 다 발갛게 물이 든 것처럼 느껴졌다.

a  조카와 함께 화개산을 오릅니다.

조카와 함께 화개산을 오릅니다. ⓒ 최화준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개산을 오른다. 화개산은 높이가 300 미터도 채 되지 않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해발고도에 비해 꽤 높은 감이 든다.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 바로 시작이 되는 산이다보니 그런 듯하다. 비탈진 산길을 걷노라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내 뒤를 따라오던 조카는 윗옷을 벗어 허리춤에 질끈 동여매었다.

조카와 함께 화개산에 오르자니 문득 십여 년 전 어느 봄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 집에 오신 친정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교동으로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달래가 많은 곳을 봐두었다며 캐러 가자고 했다. 남편과 나는 달래를 캤고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는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런 우리를 친정아버지는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셨다.

달래를 캐고 내처 산으로 올라갔다. 산등성이에는 허리춤 높이 정도로 판 참호들이 산을 타고 길게 뻗어 있었다. 한낮에도 대남방송이 들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참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았다. 아버지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관심을 보였다.

a  화개산에서 내려다본 교동도의 모습입니다.

화개산에서 내려다본 교동도의 모습입니다. ⓒ 최화준


한국동란에 참전하셨던 아버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셨다. 미군부대에 배속이 되었던 아버지는 참으로 많은 전장에서 전쟁을 겪으셨는데 북으로는 청천강에서 남으로는 거제도 포로수용소까지 여러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에는 죽음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적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를 할 때의 아찔한 순간들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 되는지 아버지는 신이 나서 그 장면들을 눈 앞에 그려주곤 하셨다. 그러나 전쟁에 어찌 아픔과 두려움이 없었을까?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숱하게 넘나들었을 아버지에게 전쟁은 두려움이었지 영광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세월은 고통은 잊게 하고 추억만 남겨놓았다.

효자묘의 전설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 임종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돌아가신 지 한참이 지나서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집에서는 연락을 하고 싶어도 전쟁터에 있는 아들에게 연락을 할 길이 없었으리라. 망자는 숨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눈을 감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때의 안타까운 정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애통하기가 짝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이 어떠했을까. 꿈이였으면 좋겠다고 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껏 울 수도 없는 처지였다. 늙은 조부님과 홀로 계신 아버지, 그리고 어린 동생들이 줄줄이 딸린 집이었으니, 아버지는 자신의 어깨 위에 큰 짐이 얹혀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으리라.

아버지는 평생 개고기를 입에 대지 않으셨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왜 개고기를 잡수시지 않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돌아가신 어무이가 개를 묵지 마라고 생전에 말씀 하셨거든, 내가 어매 돌아가시는 것도 못 봤는데 그거라도 지켜야제" 하며 덤덤히 말씀하셨다. 어버지의 애절한 효심에 가슴이 먹먹해서 애써 눈길을 다른데로 돌렸다.

a  화개산 정상에서 북한을 바라봅니다.

화개산 정상에서 북한을 바라봅니다. ⓒ 최화준


부모가 돌아가셔도 찾아볼 수 없는 게 전쟁터이다. 아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부모님이 애를 끓이는 게 또 전쟁이다. 그 막막함과 절절함을 어디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화개산의 '효자묘'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더 막막한 지경을 말해준다.

시대의 과제, 통일

삼국시대에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젊은이가 아비가 평생 먹을 양식을 제공 받는 조건으로 부잣집 자제를 대신해서 교동의 화개산성에서 군역을 하게 되었다. 아비와 아들은 서로 약조하기를 매일 해질 무렵에 북쪽 누각에 하얀 적삼을 걸어두기로 했다. 아비는 그것으로 아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화개산성의 수장이 이를 적과의 내통으로 여겨 아들을 잡아 취조하는 며칠 동안 하얀 적삼은 누각에 달리지 않았다. 이에 아들이 죽은 줄 알고 비통해하던 아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장이 아비를 화개산성 안에 안장해주고 아들로 하여금 아비의 묘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 전설이 화개산의 효자묘에는 전해져 내려온다.

삼국 시대의 그 아비도 그리고 한국동란 때의 우리 할머니도 자식을 전장에 보내놓고 노심초사하며 애를 끓이셨다.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이렇게 좋아진 지금에도 그 상황은 여전하다. 남과 북의 젊은이들은 총부리를 서로 겨눈 채 병영에서 젊음을 소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노심초사가 있다. 부모의 마음이 남이라고 다르고 북이라고 또 다를 것인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남과 북이 매한가지일 것이다.

이 시대가 우리 민족에게 요구하는 과제가 있다면 통일일 것이다. 더 이상 자식을 전장에 보내놓고 근심과 걱정으로 눈물을 짓지 않도록 우리 세대가 분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화개산에서 바라다보이는 북한 땅에도 가을이 왔는지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강화나들길 #나들길 #교동다을새길 #교동도 #효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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