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판서 만난 무녀, "사람께나 홀리겠소"

수원 구천동 달마선원의 굿판을 들여다보다

등록 2012.10.28 17:35수정 2012.10.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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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상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달마선원 전안에 마련한 굿을 위한 제물들
굿상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달마선원 전안에 마련한 굿을 위한 제물들하주성

지난 10월 24일(수),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수원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달마선원에서는 태평소와 아쟁 등의 소리가 울린다. 2층으로 올라가 보았더니, 굿판이 벌어졌다. 요즈음에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집안에서 굿을 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다. 이렇게 찾아든 굿판에 참 볼것이 많다.

청주시 흥덕구에서 왔다는 굿을 의뢰한 제가집 사람들은 굿을 하면서 무격이 내리는 공수에 귀를 기울이며 연신 "고맙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한다. 굿판에서는 모든 것이 직설적이다. "내가 다 알아서 도와주마"라는 무격의 공수는 굿을 하는 내내 계속된다. 아마도 그런 말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이 바로 굿판인 듯하다.


사슬세우기 달마선원의 원장인 김종해가 돼지를 삼지창에 올려놓고 세우는 '사슬세우기'를 하고 있다
사슬세우기달마선원의 원장인 김종해가 돼지를 삼지창에 올려놓고 세우는 '사슬세우기'를 하고 있다하주성

'입살이 보살'이라는데

이날 굿판에는 굿을 하는 무격이 4명, 악사가 3명, 그리고 제가집 사람들과 구경을 하는 사람들을 합해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그 중에서 달마선원의 원장이라는 김종해(남)와 팔달구 장안동에 거주하는 황인애(여, 30세) 두 사람이 주관을 하는 굿판이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신아버지와 신딸이다.

무격들은 자신의 내림굿을 주관한 사람을 신아버지 혹은 신어머니라고 부른다. 내림을 받은 사람을 딸 혹은 아들로 칭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령 안에서 부모의 관계로 형성이 되는 것이다. 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나이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내림을 하고, 받은 관계로만 형성이 되기 때문이다.

굿판에서 제가집의 조상이 실려 연신 '도와주마'라고 공수를 하던 김종해는 그 도와주마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입살이 보살'이라고 흔히 말을 합니다. 사람의 입에는 살이 있다는 것이죠. 거기다가 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니 그 입에서 나오는 공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죠. 굿판에서 무당이 도와주마를 계속하다가 보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굿판 내내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죠."


황인애 굿판에 들어 선 황인애가 신장굿을 하고 있다
황인애굿판에 들어 선 황인애가 신장굿을 하고 있다 하주성

"이 무녀 사람께나 홀리겠소"

신딸인 황인애가 신복을 갈아입고 굿판으로 들어섰다. 처음에 전국 명산에 있는 산신을 초대한다는 산바라기 굿을 시작한 것이다. 홍천익에 빛갓을 쓴 무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거기다가 굿판에 선 무녀가 엷은 미소까지 띤다. 구경을 하던 한 분이 작게 말을 한다.


"저 무녀 참 남자께나 홀리겠네요. 저렇게 웃으면서 굿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황인애는 24살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작은 점포 하나를 차리려고 계획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 다리가 심하게 아파 걷기조차 힘들었다는 것. 다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더니,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수술을 해도 정상적은 사람들처럼 걸을 수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을 통해 신아버지인 김종해를 찾게 되었고, 거기서 '무병이니 수술을 하지 않아도 고칠 수 있다. 다만 네가 결정을 할 일이니 시간을 줄 테니 결정을 하라'고 했다는 것. 그런데 점점 심해오는 통증과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날마다 이상한 꿈과 소리가 들려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매초마다 심하게 몸이 떨려 막 울기도 했어요.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 모아 둔 재물도 다 날아가 버리고요. 그래서 결국 내림을 받았는데, 그렇게 아팠던 다리가 언제 아팠는지 모를 정도로 싹 가시는 거예요"

황인애 회사에 다니던 황인애는 24살부터 신병을 앓다가 2년 전에 내림을 받은 애동이다
황인애회사에 다니던 황인애는 24살부터 신병을 앓다가 2년 전에 내림을 받은 애동이다하주성

제석굿 가사 장삼에 고깔을 쓰고 제석굿을 하고 있는 황인애
제석굿가사 장삼에 고깔을 쓰고 제석굿을 하고 있는 황인애하주성

이제 내림을 받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굿을 하다니. 굿은 그렇게 쉽게 배울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5년 이상은 지나야 굿을 배워 한 거리라도 굿판에서 할 수가 있는데, 애동(내린 지 얼마나 안 되는 무당을 지칭하는 말)이 굿판에서 그렇게 춤을 추고 소리를 하면서 공수까지 주다니.

밤늦게까지 이어진 굿에서 몇 거리를 맡아 한 무녀 황인애. 굿을 연구한다고 30여 년 세월을 굿판을 쫓아다닌 내 눈에도 굿을 하는 것이 예쁘게 보일 정도였으니, 타고난 팔자라는 생각이다. 굿판을 나서는데 "다음에 굿 할 때는 더 잘 배워서 보여드릴게요"라고 인사를 한다. 하기야 "영험은 신령이 주지만, 재주는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 언젠가는 더 잘 배운 굿을 하는 황인애를 굿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굿판 #황인애 #김종해 #수원 #달마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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