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은 이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려한 경관을 소재로 <성산별곡>을 지었다. 정자의 이름은 '식영정', 전라남도 기념물 제 1호로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 75-1 번지에 있다.
정자의 뒤에는 사진에 보이듯이 대단한 소나무가 휘영청 서 있다. 성삼문이 절의가에서 노래한 '낙락장송'이란 어휘가 실감나게 느껴지는 우람찬 노송 거목이다. 소나무 아래의 것은 정철 시비.
정만진
전라남도 담양군 추성로 1371번지에 가면 '가사문학관'이 있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예향(藝鄕)'을 자부하는 전라도민들은 물론 가사문학관을 거느린 담양군민들도 조금은 마땅찮아 할 것이다. 그냥 '가사문학관'이 아니라 '한국'가사문학관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부심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던지 한국가사문학관 내부의 게시물은 본심을 '살짝' 드러내고 있다. '(한국가사문학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은 호남 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그 전통을 잇게 하고 있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게시물에는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랑도 덧붙여져 있다.
전라남도 중에서도 특히 담양은 '한국가사문학의 대표작 두 편'이라고 해도 무방할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태어난 고장이다. 20대 시절에 이미 담양에서 <성산별곡>을 쓴 정철은 <관동별곡>을 지은 강원도 관찰사 재임 시기와, 우의정에 오르는 1589년 사이의 4년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고향에 머물 때에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창작했다. 그만하면 한국가사문학관 게시물의 설명이 없더라도, 담양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세워진 데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은 식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