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고 싶다 했더니... 임산부는 나대지 마라?

[나의 투표권 수난기] 산모도 투표할 수 있는 방법 찾아주세요

등록 2012.11.01 12:11수정 2012.11.0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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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민주노총은 '나의 투표권 수난기' 기획을 진행합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투표날에도 특근해 일을 합니다. 유통업·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식당 아주머니·아르바이트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일단 투표 마감을 현행 오후 6시에서 9시로 세 시간 연장하면 어떨까요? 여러 시민의 투표권 수난기가 한국 사회의 참정권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a  제19대국회의원선거일인 2012년 4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농학교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한 아이가 엄마가 기표하는 동안 주변을 보고 있다.

제19대국회의원선거일인 2012년 4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농학교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한 아이가 엄마가 기표하는 동안 주변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내 삶에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바로 '정치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어 정치와 나는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 살 집을 마련하면서 부동산이, 전세자금대출이 문제였고 아이가 생기니 산모 지원금부터 아이의 무료예방접종, 보육료 등 모든 것이 정치인들이 결정하는 것에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9년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는 정치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와 어느 당의 어떤 국회의원이 어떤 정책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유심히 지켜보았고 다음 해에 있는 지방선거에 꼭 투표를 하리라 마음 먹었었다.

출산예정일은 5월 27일, 6월 2일 투표 어쩌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아이가 태어날 예정일은 2010년 5월 27일, 그리고 그 해 지방선거는 6월 2일이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가 가까워 오고 동네가 선거운동으로 술렁일 때 열심히 공보물을 보다 '아차!' 싶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 선거일인데 나 무사히 선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예정일이 있어도 아이가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 첫 아이다 보니 예정일 앞뒤 일 주일 정도 차이는 예상해야 한다 했다. 만약 아이가 엄청 일찍 태어난다면 혹시 투표하러 가는 일이 가능하겠으나, 27일에 태어난다면 일 주일도 안 지난 6월 2일에 투표를 하러 밖에 나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꼭 투표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부재자 투표가 26~28일이었는데 딱 예정일이라 부재자 신청을 한다 해도 운에 맡겨야 할 일이었다.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아픈 사람들은 어떻게 투표할까 싶어 알아 보았더니 장기 입원자의 경우 의사의 확인 하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의 경우 통장의 확인 하에 우편으로 투표가 가능했다.

희망이 보였다. 직접 선관위 홈페이지에 문의를 했다. 선거일이 예정일인 산모인데 아이를 낳고 나서 나올 수 없으니 집이나 병원에서 투표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선관위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장기입원자의 경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투표를 꼭 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재자 투표를 하거나 투표일 이후에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는 방법밖에 없다고….


결국 나는 운이 좋으면 투표할 수 있고 운이 나쁘면 투표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장기 입원이 가능하니 단기 입원도 의사의 확인 하에 우편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건 무조건 안 되는 것일까? 왜 딱 그 시기 밖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거지?

일이 이지경이 되고 나니 화가 났다. 내가 투표를 못해서 이기도 하지만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특히나 이리저리 사회의 여러 부분에 소외 당하는 임산부의 입장이라 투표에서조차 소외를 당하고 나니 더욱 화가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선관위가 나몰라라 하니 더욱더.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도 글을 남겼지만 역시나 답변이 없었다. 아무도 내가 투표하고 싶다는데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렸다.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고 투표에 소외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모든 국민들이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 거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엄청난 조회수와 댓글로 순식간에 아고라 순위에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수많은 댓글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물론 투표하려는 의지를 높게 산다는 응원의 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댓글들은 '산모가 마음을 곱게 가져야지 그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으면 안 된다'는 걱정글에서, '애 낳는 것에나 집중하지 뭘 그렇게 나대냐, 애가 불쌍하다'는 막말 댓글까지. 그중에 최고의 댓글은 '저렇게 센 여자랑 사는 남편이 불쌍하다'는 글이였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아래에 이런 댓글을 다는 해프닝도 벌어졌었다.

'나 이 여자 남편인데 저 안 불쌍합니다.'

양수 터져 병원으로, 진통 끝에 수술... 남편은 투표권 행사

결국 나는 투표 당일 새벽 4시에 진통이 왔고 2시간만 기다려 오전 6시가 되면 투표를 하고 병원에 가야지라고 마음 먹었으나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오기가 생긴 나는 병원에 가서도 자연분만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 구급차를 타고서라도 투표를 하려 했다. 그러나 열 시간의 진통 끝에 수술을 했고 나는 움직일 수 없어 투표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남편은 수술이 오후 6시 전에 끝나 아직 마취에서 다 깨지도 못한 나를 두고 택시를 타고 투표를 하러가 마감 십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장 찍고 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여러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소외되는 사람들은 살기 어려운 사람들일 것이며 정치인들이 어찌 하는가에 따라 가장 많이 흔들리는 사람들일 거다. 그런 사람들이 투표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투표는 모든 국민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야 한다. 공정한 선거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 이외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투표수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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