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Vermont) 커플 우드로우 사코(Woodrow Sacco)와 매디 시겔(Maddie Siegel). 이들과는 여행 도중 서너번 마주쳤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최성규
산책을 하러 대문을 나서는 찰나 네덜란드 부부 라이더가 등장. 클라즈 란팅가(Klaas Swaas)와 스와스(Swaas Lantinga).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1년 일정으로 온 세계에서 자전거를 굴리고 있다. 맨 처음 아시아를 돌고 호주로 넘어갔는데 마지막을 미국 횡단으로 장식하려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뉴욕에 도착하면 이들의 여행은 끝난다.
부부는 나를 크게 반겼다. 그들의 기억 속에 한국인은 친절함의 대명사로 각인되었기 때문. 그리고 한국을 여행할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여기 식당, 어떻게 가요?""걱정말고 저만 따라 오세요."걱정 말라던 행인은 뒤돌아 헐레벌떡 뛰었다. 클라즈와 스와스도 급히 따라갔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위해 그는 식당 주인에게 부탁해 자리까지 예약해 놓았다. 경주에서도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근처 가게에 들어가 그날 묵을 호텔의 위치를 물었다. 갑자기 여주인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건물 밖으로 시내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늦은 밤 정규운행이 끝난 버스는 그들 둘만을 태우더니 시내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녔다. 예상치 못한 시간에 나타난 버스를 보고 사람들의 신기함이 증폭되는 가운데 그들은 어느덧 호텔 앞에 다다랐다.
마지막으로 동쪽을 향하는 중년 라이더들까지 도착. 총 8명이 하나로 뭉쳤다. 사람은 늘어나는데 정작 주인에게는 급한 사정이 생겼다. 질리언 아주머니는 오늘 밤 비행기로 보스턴에 가야 한다. 해안 경비대에서 일하는 아들을 위시해 주변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 주인 대신 자전거 라이더들만 득시글거리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만약 나라면 이렇게 집을 맡기고 나갈 수 있을까?
저녁 무렵 동네 슈퍼로 마실을 갔다가 누군가를 만났다. 한국인 아주머니 줄리(Julie). 보스턴에서 출발한 부녀 라이더들의 든든한 지원군. 말썽을 일으켰던 차를 고쳐서 이틀 전에 드디어 가족과 상봉한 것이다. 이들 역시 버몬트 커플처럼 나를 따라 잡고야 만다.
게다가 이들이 묵는 호텔 오드웨이(hotel ordway)에는 ACA 패키지 팀도 자리를 잡았다. 질리언의 집에 8명, 호텔에는 가족 라이더 3명과 투어 참가자 9명 ACA 매니저 2명. 도합 22명의 라이더들이 작은 마을에 우글거린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고 질리언의 집에서는 취침 준비가 한창이다. 다들 숙련자답게 각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2대의 트레일러 앞마루에 각각 2명, 옆 공터에 텐트를 친 네덜란드 부부, 집 앞마당에는 중년 라이더 2명이 각자 1인용 텐트를 세웠다.
서로를 잘 알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든든하다. 그토록 바라던 라이더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 함께 자고 있다니. 그것도 8명이나. 서늘해진 밤바람은 온 몸을 휘감고 하늘에서는 달이 구름을 뚫고 빛을 뿌린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구나. 생각은 점차 고요해지고 숨소리는 고르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7월 3일 화요일Ordway, CO - Lake Pueblo State Park, CO60 mile = 96 km닭 우는 소리와 함께 라이더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깬다. 어젯밤 가장 늦게 들어온 중년 라이더들은 일어나기 무섭게 짐을 챙겨 사라졌다. 버몬트 커플 우드로우 사코(Woodrow Sacco)와 매디 시겔(Maddie Siegel)은 짐이 많아 준비시간이 더디다. 이들이 끄는 트레일러는 자전거 페니어 백과 달리 자전거에 직접 하중을 전달하지 않는다. 무게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다보니 더 많은 짐을 싣게 되는 것. 한 명당 50파운드(22.7kg), 도합 100파운드를 끌고 다니는데 나같은 페니어 백 사용자는 싣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네덜란드인 부부도 어느덧 잠자리를 정리하고 세면을 한다. 내 옆에서 자던 솔로 라이더는 이 북새통에서도 참 잘 잔다. 아직도 이른 새벽이지만 남들이 워낙 부지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게을러 보이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