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는 용감했다미국을 가로지르는 세 명의 가족 라이더. 보스톤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이렇게 가족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최성규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길이 갈렸다. 일체 캠핑장비를 구비하지 않은 이들 부녀는 모텔을 찾아 들어갔고 다시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애초 목적지는 30마일 떨어진 러쉬센터(Rushcenter)였지만 지금은 온도가 최고조로 달아오른 한낮. 화씨 108도. 여행자는 또 다시 갈등에 휩싸인다.
근처를 서성거리다 ACA 패키지 여행 참가자 한 명을 만나게 됐다. 네덜란드에서 온 우발드 크락튼(Ubald Kragten) 아저씨. 근처 교회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여행자 한 명쯤 더 와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굉장히 솔깃한데.
투어링 사이클리스트(Touring cyclist)라는 직함을 가진 리더 폴 오시카(Paul Osika)가 날 맞이해줬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저녁식사부터 환상적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콜드 수프, 토마토 주스에 이것저것 채소를 섞어 믹서에 갈아 만든다. 직접 구운 빵에다가 참치 스튜까지... 땅콩버터 바른 식빵 하나에 감지덕지하던 내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다.
이들이 참가한 가이드 투어(Guided tour)는 자전거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배낭여행 패키지다. 자전거와 용품을 제외하고 여행 일정에 소요되는 모든 제반 사항을 지원한다. 가격은 7200달러. 82일간의 일정 동안 하루 세끼 식사, 간식, 차량 지원, 관광, 숙박 등이 제공된다. 일정에 얽매이는 게 싫은 데다 목돈이 부족한 젊은이들은 패키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허나 불확실성과 위험은 줄이면서 여행을 즐기려는 50~60대들의 호응은 꽤 높은 편.
잠시 후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리더와 함께 일정에 대한 토의를 한다.
"내일은 30마일까지는 아무런 서비스가 없어요. 러쉬센터(Rushcenter)에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서 아침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네코마(Nekoma)-알렉산더(alexander)를 지나 네스 시티(Ness city)까지 65마일입니다."회의를 한쪽에서 지켜보며 나 또한 일정을 가다듬었다. 캔자스의 살인적인 더위를 예상 못 한 내게 이들의 라이딩 요령은 참고할만하다. 새벽에 득달같이 일어나 낮 12시 전까지 60~70마일을 주파해야 한다. 자, 내일은 ACA 패키지 팀과 함께 달린다. 한국인의 힘을 보여주마.
6월 29일 금 Larned, KS - Ness city, KS64mile = 102.4km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이 삐걱 열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어딘가로 향한다. ACA 패키지 참가자들이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대단한 자기 관리다.
그 누구도 출발시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낮까지 늘어지게 자도 상관없다. 그날 정해둔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땡이다.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그 누구도 뒤처지려 하지 않는다.
유일한 20대인 나만 뒤처졌다. 오전 6시 알람에 맞춰 일어났지만, 모두 떠나버렸다. 홀로 남겨진 공간은 적막하다. 교회 안에는 뒷정리를 하고 있는 매니저만 눈에 띄었다. 지원 차량을 모는 역할인지라 그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새벽녘 하늘에 낀 구름은 아침 햇살을 봉쇄한다. 상쾌한 공기. 이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겠지.
그거 아세요? 고통과 쾌락은 비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