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뒤흔든 12개의 충격적 미스터리

[리뷰]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의 검은 안개>

등록 2012.11.01 11:30수정 2012.11.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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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본의 검은 안개> 겉표지

<일본의 검은 안개> 겉표지 ⓒ 모비딕

1948년 1월 26일, 일본에서 이상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오후 4시께, 도쿄의 제국은행 지점에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한쪽 팔에 공무원을 나타내는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는 이 근처에서 집단 이질이 발생해서 전원 예방약을 먹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말을 은행직원에게 전했다. 그리고 이 말을 믿은 직원 16명에게 미리 준비해간 독약을 먹이고 직원들이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현금과 수표를 챙겨서 달아났다.


이 사건으로 직원 중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격담 등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었다. 결국 경찰은 홋카이도의 한 화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강압 끝에 자백을 받아낸 뒤에 수사를 종결할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일종의 정신착란 증세를 가지고 있던 그 화가는 경찰의 추궁을 한달 가까이 버텨냈지만,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반쯤 미친 상태에서 자백(?)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전쟁 이후 일어난 괴사건들

일본의 추리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1960년에 펴낸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에서 이와같이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수사가 종결된 사건 12건을 다루고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추리작가 특유의 귀납적인 논리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추리를 펼쳐나가고 있다.

<일본의 검은 안개>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시간적 배경은 1945년부터 1954년 까지다. 미궁에 빠진 채 수사가 종결된 사건은 언제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이 8년에 특별히 주목한 까닭은 이 시기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1945년부터 1951년까지 6년 동안 일본은 패전 후에 주권을 갖지 못한 채 연합국 총사령부의 지배하에 있었다. 말이 좋아서 연합국 총사령부지 실제로는 미국 점령군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조직의 최고 사령관은 더글러스 맥아더였다. 총사령부는 패전 이후에 어지럽고 불안한 일본 사회를 안정시키고, 한편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일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했다.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일본 관료들이 모두 점령군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았고, 일본 사회가 미군이 원하는 만큼 빠르게 안정되지도 않았다. 작품에서 다루는 사건들도 여러가지다. 출근길에 사라졌다가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 은행총재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총에 맞고 숨진 경찰도 있다. 산책 도중 미군에게 납치되서 1년간 감금당한 사람도 있다.


작가는 이런 사건들을 조사해가는 가운데 그 배경에 연합국 총사령부의 어느 부문이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이른다. 이것을 무시하고는 사건의 해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단순한 범죄처럼 보이는 이 사건들은 모두 점령군 또는 거기에 영합한 일본인 권력자들의 모략에 의해 발생한 것일까?

진실을 추적하는 추리작가

작가는 독특하게도 12번째 사건으로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다. 한국전쟁 자체보다도 그것이 일본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다음 달, 맥아더는 일본 수상에게 편지를 보내서 '경찰 예비대와 해상 보안대를 증원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을 중심으로 일본의 군비가 재정비되었기 때문에 작가는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현재의 일본 자위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당시 소련과 중국을 포위하는 강력한 사슬의 중심고리였기에 일본인들에게 끊임없이 공산국의 위협을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때, 그런 역할을 해줄 가장 적절한 국가는 바로 한국이기에 한국은 영원히 분단되어 있어야 한다. 미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이와 관련해서 "한국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이 땅 혹은 세계 어딘가에 한국이 없으면 안되었다"라고 말을 할 정도였다.

추리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기이한 사건을 만들어내고 날카로운 추리로 그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본다. 그렇다면 작가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에도 똑같은 추리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본의 검은 안개>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사건들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참신한 가설을 세워나간다.

통신수단도 발달하지 않았고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이렇게 자료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평생 전쟁과 권력에 반대했던 인물이었다. 작품 속에서 세이초가 말하고 싶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사건들은 모두 60여년 전 바다 건너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왠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일본의 검은 안개> 전 2권.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김경남 옮김. 모비딕 펴냄.

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모비딕, 2012


#일본의 검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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