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오돌오돌... '촛불'만 기다립니다"

[르포]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 농성 17일째

등록 2012.11.03 12:12수정 2012.11.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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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엔 너무 추워 밤새 오돌오돌 떨었어요. 바람에 철탑이 흔들려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밤을 송전철탑 위에서 보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씨는 밤새 뜬 눈으로 지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법원이 판결했잖아요.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전국에서 90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는데 춥다고 포기할 순 없죠."

그는 언제 추위에 떨었냐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2일 울산의 아침 최저기온은 올 가을 들어 가장 낮은 2.5도였다. 하지만 송전철탑 위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에 가깝다.

20m 높이의 송전철탑에서 농성을 이어간 지 벌써 17일째, '사내하청노동자 전원 정규직화'와 '신규채용 중단'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철탑 20m 지점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의 일이다.

"누군가 지켜봐준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줄 몰랐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2일부터 17일 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2일부터 17일 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많은 전문가들과 법조계에서 이들의 철탑농성 정당성을 이야기하면서 지지성명을 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가 비단 이들 두 조합원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꿋꿋하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매일 밤 매서운 바람을 함께 맞으며 촛불로 연대해주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에 더 그랬다. 반면, 촛불이 꺼지고 밤이 오면 이들의 외침은 철탑 위를 쓸고 가는 거센 바람 속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들 두 조합원의 외침을 꺾으려는 목소리 또한 날로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2일 낮 12시. 송전철탑이 있는 현대차 명촌중문 앞 주차장은 차들만 늘어선 채 적막이 감돌았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던 회사 측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통화를 한 천의봉 사무장은 "회사가 이제 우리를 철탑에서 끌어내리는 것을 포기했나 보다" 하며 웃었다.


그는 "정몽구 회장 만나기가 참 어렵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10월 29일 현대차 정몽구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면서 "두 동지가 목숨 걸고 15만4000볼트 송전철탑에 올라갔다. 불법파견문제를 해결하고 두 동지가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는 것은 현대차의 통큰 결단뿐"이라며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요청기한이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천 사무장을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17일째 철탑 위에 있는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사무장은 얼마 전 10일 만에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지난번 비를 맞아 더 가려워진 머리가 이제는 개운해졌다고 했다. 하루 두 번 식사를 올려주는 우상수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사무차장이 머리 감는 물을 올리느라 팔에 근육통이 생겼다는 후문이다.

이곳에서는 어젯밤에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통합진보당 등 진보정당 사람들이 매일 밤 참석해 철탑 위 농성 조합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철탑 위 천의봉 사무장은 "누군가 연대하며 지켜봐준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인 줄 몰랐다"며 "철탑 밑에서 연대사를 하는 분들의 말이 다 들려요. 정말 힘이 나고 고맙죠"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오후 6시가 기다려진단다. 누군가 또 촛불을 들고 응원하러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끝나면 다시 찾아오는 매서운 바람과 고독은 또 한 차례의 인내를 요구한다.

철탑 위의 그들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밑에서 바라본 송전철탑. 바람이 매서운 밤에는 철탑이 흔들린다
밑에서 바라본 송전철탑. 바람이 매서운 밤에는 철탑이 흔들린다박석철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두 조합원의 농성을 매도하는 일들이다. 2일 한 지역 보수언론은 '근로자 1명 판결 확대해석 급제동'이라는 기사를 1면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지난달 25일, 울산지법이 2010년 말 비정규직 노조의 공장 점거농성에 참가한 조합원 191명에게 50만~3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한 것을 두고서다. 당시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법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앞서 또 다른 보수언론은 '현대차 비정규직 연봉이 5438만 원'이라는 회사 측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싣기도 했다. 비정규직 노조가 "말도 안 되는 거짓 자료"라고 항변했지만, 두 조합원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을 "배부른 노동자의 투정"으로 몰고 가는 여론이 심상찮게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철탑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런 소식을 접하고 있는 두 조합원이 가장 참기 힘든 일이다.

오후 1시, 우상수 사무차장이 철탑 위로 올릴 식사 준비를 마쳤다. 오늘 메뉴는 콩비지와 김치찌개다. 연대하는 분들이 추운 날씨에 힘내라고 준비해준 것이다.

우상수 사무차장은 "어느 언론을 보니 '현대차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에 대한 명분이 없어졌다'고 했더라. 어처구니 없다"며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9234개 공정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대법원과 중노위가 모두 불법파견이라고 하고 있지 않나"고 분개했다. 그는 "회사 측과 보수언론이 최병승 동지 혼자의 일로 몰아가고 있다"며 "1만 명 비정규직 모두가 소송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우리를 대표해서 상징적으로 재판을 한 것이며 이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2일 중앙노동위는 최병승 조합원에 대해 "해고절차를 위반한 부당해고"라고 판정하고 현대차가 복직시킬 것을 통보한 바 있다. 하지만 최병승 조합원은 여전히 복직되지 못하고 지금은 철탑 위에 있다.
덧붙이는 글 박석철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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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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