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Walden) 가는 길그랜비(Granby)에 있다는 브레비 아저씨네 집을 포기하고 월든으로 방향을 튼다.
최성규
갑작스런 강풍까지. 월든(walden)에 도착할 때까지 사계절을 모조리 맛볼 수 있었다. 시티 파크에 도착해 캠핑을 준비했다. 파고라(Pergola)로 들어서니 젊은 친구가 인사를 건넸다. 로스 먼로(ross munroe)는 뉴욕 출생이지만 지금은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산다. 우연하게도 내가 미국횡단을 시작한 도시다.
그는 정석대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밟지 않았다. 리치몬드에서 워싱턴 DC, 피츠버그로 올라갔다가 시카고, 세인트 루이스를 거쳐 파밍턴(farmington)에 도착하여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 합류했다. 그 이후 콜로라도 푸에블로에서는 곧장 덴버로 북진한 다음 록키산맥 국립공원(Rocky mountain National park)를 지나 그랜비(granby)로 건너 오면서 다시 코스로 복귀한 것이다.
로스(Ross)는 ACA 패키지 팀의 휴이(Huey) 아저씨와도 안면이 있었다. 둘은 2년 전에 여행하다 만났다. 한 달 정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텍사스에 진입했을 때 아저씨는 여행을 포기했다.
"왜 그만뒀대?""돈을 너무 많이 썼거든. 무겁다고 캠핑 용구는 하나도 안 챙겨왔어. 날마다 모텔에서 자고 세 끼는 레스토랑에서 먹었어."모텔비가 적어도 50달러, 식사비가 30달러. 잡비 포함해서 하루에 100달러씩 길에다 깔고 다니면 제 아무리 부자라도 감당해 내지 못할 터였다. 그는 가끔 어이없이 돈을 쓰기도 했다. 상당한 난코스를 지날 무렵이었다. 그의 체력으로는 무리였다. 그 경치를 포기하기 싫었던 휴이는 차를 렌트해서 기어코 그 땅을 밟고야 말았다.
그게 바로 ACA 패키지에 참가한 이유였다. 88일 동안 7200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허나 그의 전력을 참작한다면 혼자만의 미국 횡단에 비해 오히려 싸게 먹힐 것이었다.
문득 로스가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그의 어머니는 임상 간호사(Nurse Practitioner ; 보통 의사가 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간호사)로 일하는데 7월 9일부터 15일까지 6박 7일 동안 와이오밍 주 잭슨에 머무른다. 급하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로스는 일정을 앞당겨서라도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맘을 먹은 것이다. 9일인 내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달려 잭슨에 도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382.5(하루 평균 76.5)마일을 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
이른바 엄마 찾아 삼만리다. 이탈리아에서 1886년 발표된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의 원작 동화인 <쿠오레(Cuore)-사랑의 학교>에는 단편 동화가 하나 실려 있다. 바로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Dagli Appennini alle Ande)'. 1976년에는 일본에서 이를 각색하여 52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엄마를 찾아 떠나는 '마르코'의 긴 여정을 다루고 있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전 세계를 돈다는 내용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던 명작이었다.
이번에는 '애팔래치안 산맥에서 록키 산맥까지'라고 이름 붙이면 될까?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조연으로라도 참여하고 싶은 맘이 생겼다. 가슴 속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덤으로 시간도 벌고 길동무도 생기게 된다. 5일간의 일정을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로스는 기꺼이 받아주었고 우리는 한 팀이 되었다. 그럼 나는 마르코가 데리고 다니던 하얀 원숭이 역할인가?
7월 9일 월요일Walden, CO - Saratoga, WY69 mile = 110.4 km뼛속 깊이 치미는 한기에 새벽잠을 깨고야 말았다. 소포로 보내버린 에어매트가 몹시 그립다. 얇은 천 쪼가리는 대지의 여신이 내뿜는 냉기를 당하지 못하고 몸을 감싸던 잠의 신 힙노스(Hypnos)마저 도망치고 말았다. 오전 3시. 안간힘을 쓰며 새우잠을 다시 청해보았다.
해가 다시 뜨고 온기가 조금씩 느껴질 무렵 마을 전광판은 화씨 48도(섭씨 8.9도)를 가리킨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캔자스에서 100도 넘는 무더위에 시달렸는데. 그만큼 여행이 진척되었다는 증거를 몸으로 느낀다. 함께 자던 자전거 여행자들도 모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