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바람의 근원지는 '혼란'이다.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했다가 그의 후보직 사퇴로 패닉 상태에 빠졌고, 그래서 갈 곳 몰라 헤매는 지지층이 1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을 '문재인도 지지한다'로 돌아서게 만드는 게 '안철수 효과'의 핵심이다. 그래서 안 전 후보는 시민들을 만나면 입에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외쳤다.
"혹시 주위에서 안철수가 사퇴해서 투표 안 하겠다는 분, 친구나 이웃 계시면 꼭 투표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안철수의 호소'가 통한 것일까? 이영자(68)씨는 안철수 전 후보의 열열 지지자다. 문재인 후보와의 첫 공동유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광장에 와서 전망 좋은 자리를 맡았다. 이씨는 안 전 후보가 사퇴하면서 단일후보로 문 후보를 지명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문재인이 안철수에 대한 나의 기대와 너무 안 맞았다. 기존 정치권이 싫어서 안철수를 지지했는데, 후보 사퇴한다고 하니, 남은 문재인이나 박근혜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여성이니까 박근혜로 갈까, 아니면 문재인이 좀 더 나을까, 그러면서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안철수를 지지했다가 곧바로 문 후보를 지지한 딸 황소영(42)씨의 설득도 소용없었다. 안 전 후보의 사퇴 이후 "어떻게 해야 하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한 '전폭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야 이씨는 "문재인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부산 자갈치 시장 옆 PIFF 광장에서 만난 이영숙(47)씨에게도 '안철수 효과'가 통했다. 그는 안 전 후보를 보기 위해 수능시험을 마친 고3 딸의 손을 붙잡고 달려왔다.
"(안 전 후보가 사퇴했을 때) 허무했다. 속상하고, '정말 이게 아닌데' 싶더라. 안철수가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 꼭 필요할 것 같았는데. 그래서 문재인을 지지하지 못하고 그냥 있었다. (문 후보를 전폭 지원하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안철수가 지지하는 분은 그 만한 재목이 되니까, 지지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지."그는 "'안철수 효과'가 있는 것 같으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인성(24·대학생)씨는 부산역 광장 계단 위에서 굳은 표정으로 안 전 후보의 지원 유세를 지켜봤다. 그는 "지금도 안철수가 사퇴하지 말고 끝까지 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사퇴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고 울화통이 터져서 문재인을 지지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좀 풀렸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안 전 후보가 사퇴하면서 단일화가 이뤄졌지만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대체로 2~3%포인트 정도 뒤졌다.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섭섭해 하던 안 전 후보 지지층의 이탈은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6일 이전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와 박 후보의 격차는 7~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박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문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특히 그런 현상은 부산·경남(PK)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안 전 후보와 문 후보가 첫 공동유세를 부산으로 잡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안철수의 등판'은 이런 추세에 분명한 제동을 걸었다. 주말 대회전을 마치면서 실시된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문 후보가 다시 2~3%포인트 차로 박 후보를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 전 후보가 '전폭 지지' 선언을 하지 않고 간을 보는 동안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문 후보에게 '반전의 계기'는 만들어줬지만 '역전의 희망'까지 담보해 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부산 서면에서 만난 강양수(68)씨는 "(안철수의 등판이) 너무 늦었다.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 같다"면서 "문재인 지지자들은 대선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지 후보를 결정해놓은 상태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황소영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한 마디, 어느 한 행동이 한 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부산 사람들은 조금 거칠지만 인간적인 정이 많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그런 것을 보여준다면, 지지는 하지만 투표하러 가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8일 서울 대학로 유세를 지켜본 박정희(36·직장인)씨도 "안철수의 전폭 지원 선언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철수가 사퇴를 했을 때, (바로 문재인을 지지하지 못하고) 조금 고민했다. 차라리 투표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저를 비롯해 안철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지지한다고 얘기했으니, 한 편으로 완전히 묶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지지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안철수가 그동안 흔들렸던 지지자들의 마음을 잡아준 것 같다."'박근혜 대세론' 무너뜨린 안철수, 문재인에 '희망'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