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멜다 마르코스그녀는 현재 하원의원이다. 참고로 그녀는 미스 마닐라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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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구두 3천 켤레'의 주인공 이멜다 마르코스와 아들 봉봉 마르코스는 필리핀에 돌아왔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귀국하지 못하고 1989년에 하와이에서 죽었지만, 그의 부인과 아들은 1991년에 귀국을 허락받았다. 마르코스 유족은 현재 정치적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쫒겨난 독재자 일당도 후진적인 지역감정의 정치구도에서는 고향마을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이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1992년 대선에 이멜다가 출마하였는데 큰 표차로 낙선하였다. 1995년 총선에 출마하여 자신의 고향인 레이테(Leyte)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0년 선거에서는 남편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에 하원의원으로 출마하였다.
당시 현직 의원은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였는데, 그는 상원의원으로 출마하였고 이들 모자는 고향지역의 전폭적인 지지로 모두 당선되었다. 이멜다는 2012년 10월, 다음해에 있을 총선거에 현직인 일로코스 노르테 하원의원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그녀의 나이는 2012년 현재 83세이다.
엄마는 하원의원, '계엄령 공주'는 주지사, 아들 '봉봉'은 상원의원 아이미 마르코스는 페르디난드와 이멜다의 장녀로 1955년 출생이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총 3회 일로코스 노르테의 하원의원으로 재임하였다. 그 후 2010년에는 일로코스 노르테의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그녀는 계엄령과 마르코스 대통령의 행적을 가장 열렬히 변호하는 '계엄령 공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의 계엄령에 대한 비판, 고문과 살인에 대한 고발에 대해 "계엄령 하에 건설된 도로와 교량이 가장 튼튼하고, 심지어 그 때 만들어진 영화도 매우 좋다"는 식으로 계엄령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녀의 행적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예를 들면, 1977년 아이미가 수행했던 '대학 오픈 포럼'에서 그녀에게 곤란한 질문을 제기했던 트라하노는 아이미의 경호원에게 끌려갔고 며칠 후 폭행과 고문을 당한 사체로 발견되었다.
마르코스 일가의 차세대 주자는 장녀 아이미가 아니라 아들 봉봉 마르코스다. 계엄령 하에서부터 부주지사와 주지사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그는 귀국 후 1992년에 일로코스 노르테의 하원의원이 되었고 누나인 아이미가 3회 하원의원을 하였던 1998년부터 2007년에는 주지사로 일했다. 그 후 2007년에서 2010년까지 아이미와 자리를 바꾸어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후임으로 어머니 이멜다에게 하원의원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 지역에서 마르코스 집안 사람들이 돌아가며 의원직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미 파악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고향지역에서 엄마는 하원의원, 큰딸은 주지사, 아들은 상원의원으로 재임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선거에서는 6년 임기의 상원의원에 출마하여 현재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향후 유력한 대선후보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버지가 밀알이 되자, 아내와 아들은 새 시대를 열었다 니노이 아키노는 죽고 대통령이 못 되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그의 아내와 아들이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사망 직후 코라손 아키노가 당선되었고, 아들 노이노이 아키노는 현재 필리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009년 코라손 아키노가 죽었다(정치적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몇 주 전에 사망하였다). 그러자 아키노 부부에 대한 향수가 급부상했고, 그들의 상징인 '노란' 리본이 전국을 뒤덮었다.
노이노이 아키노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하였지만 처음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당시 그가 소속되어 있던 자유당(Liberal Party)의 대통령 후보는 초대 대통령인 로하스의 손자인 마 로하스였다. 그런데 위의 언급한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노이노이가 갑자기 주목받게 되었다. 로하스 후보는 아로요의 독재정치의 연장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노이노이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이노이는 깊은 사색에 빠지고 얼마 동안 잠적했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겠다는 결심을 발표했다.
당시 노이노이의 선거 슬로건은 "부패가 없으면 가난도 없다(Kung walang corruption, walang mahirap)"였는데 필리핀의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인 부정부패를 건드리며 가난한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키노 일가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전국을 뒤덮었고, 결국 노이노이는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현재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은 꽤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부정부패 일소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국비를 지원하지 않은 마르코스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