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정돈된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시 노비사드.
홍성식
"너희 나라 프레지던트 킴(Kim)과 닮았네"오랜 시간의 산책과 영화 촬영 현장 구경이 지겨워진 나는 잠시 쉬려고 묵고 있던 '소바 호스텔'로 돌아왔다. 유럽과 할리우드 영화포스터가 벽면 가득 걸린 깔끔한 숙소.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은 동양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노비사드에 도착한 첫날 저녁. 벨기에 할아버지와 독일에서 온 여대생들, 나와 숙소 주인이 공용거실에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
동유럽을 다니다보면 아직 한국에 관해 상세한 걸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독일 여학생 하나가 "한국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쓰느냐"고 물었다. 또 시원찮은 영어 실력으로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해야겠구나 생각하는 찰나, 숙소 주인이 먼저 나섰다.
"한국은 중국과는 별개의 나라이고, 언어와 문자도 다르다. 중국 문자는 사물의 형체를 본뜬 것인데, 한국의 경우엔 아니다. 수백 년 전에 어떤 왕이 그들만의 문자를 만들었다. 일본 문자는 중국, 한국과는 또 다르다"는 요지의 설명을 하는 숙소 주인장. 나는 그 '어떤 왕'이 '킹 세종'이라는 것만 부연했다. 내 수고를 덜어준 셈이다.
그가 한국에 관해 알고 있는 건 그 외에도 많았다. 삼성 핸드폰이 노키아 제품보다 더 많이 팔리고, 현대와 대우가 한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 생산업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홍상수와 김기덕의 영화 DVD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작품들이 "동양적인 독특함을 보여 준다"는 평까지. 한국영화에 관한 그의 판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저 정도면 세르비아 노비사드에선 최고의 지한파군"이라는 혼잣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낮잠을 자기 위해 숙소로 돌아온 내가 가벼운 인사를 전하자, 소파에 기대 앉아 책을 읽던 그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어제부터 봤는데 너 말이야, 너희 나라 대통령인 미스터 킴과 너무 닮았어." 미스터 킴? 한국 대통령의 패밀리 네임(姓)은 '리' 혹은, '이'인데.
갑작스런 말에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그가 덧붙였다. "프레지던트 킴은 세르비아에서도 유명해. 미국이 무서워하는 핵을 가졌잖아."
아, 그는 내가 북한에서 온 여행객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기문에 이어 김정일과 닮았다니.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는 김기덕과 홍상수도 북한의 영화감독인 줄 알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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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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