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이 생기면? 당연히 한국부터 떠야지"

정답은 '토익'없는 세상

등록 2013.01.20 15:32수정 2013.01.2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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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닌가 보다. '10억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이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날 것이다."고 했다. 이유야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한국은 살기 피곤하다'는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실제로 한 응답자는 "고등학교 때까진 오직 대학 갈 생각, 대학가면 취직할 생각, 취업하면 결혼할 생각, 회사 다니다 보면 자식 키우며 정년까지 버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은 결국 죽을 때까지 '압박'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인 거죠.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요."라고 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로 '이중성'을 꼽았다.

"자꾸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인재가 되라고 말하는데 알다시피 잡스는 대학교를 중퇴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교 중퇴니까 고졸인 거죠. 솔직히 고졸로 삼성이나 현대에 CEO가 될 수 있을까요? 차라리 하늘에서 별을 따보라고 하세요. 그게 더 쉬운 일이니까. 유감스럽지만 대한민국에서 고졸이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작업반장'만 하고 있어도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사회의 청춘들을 이토록 피곤하게 하는 것일까?

전공? '토익'이 먼저지

a 동생의 책꽂이 겨울 방학동안 다 보겠다는 열의에 불타있다

동생의 책꽂이 겨울 방학동안 다 보겠다는 열의에 불타있다 ⓒ 김종훈


<페스트컴퍼니>가 '2012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회사' 50개를 뽑았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이 수위를 차지한 가운데 애석하게도 한국 기업은 단 하나도 순위에 들지 못했다. 구성원에 대한 압박만 컸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이 전혀 숨 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자료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지금의 상황을 우리사회가 타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데 있다. 대학 도서관을 10분만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전공불문하고 대부분의 책상 위엔 영어 문제집뿐이다. 토익, 텝스, 토플 종류만 다를 뿐, 마치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모두 '영어시험'만 준비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것이 문제다. 초중고까지 전 세계에서 수위를 차지했던 인재들이 대학만 가면 바보가 되는 이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영어만 강조된 탓이다. 그렇다고 외국인과 대화를 잘하느냐. 조용한 도서관에서 벽보고 앉아 '유창한 말하기'를 익히기란 신기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자신이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을 뒷전으로 만들게 한다. '토익'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탓이다. 실상은 토익 고득점을 받아도 '영어'로 말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는데도 말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L기업에 5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31)의 경우가 그렇다.

"토익 점수 받으려고 마지막 학기에 반년을 휴학했어요. 생각해보면 고3때 보다 더 열심히 했죠. 강남에 있는 토익학원가서 새벽부터 밤까지 앉아있었으니까. 덕분에 6개월 만에 토익 900점 받고 취업에 성공했죠. 그런데 막상 입사 후에 영어로 PT를 하려고 하니, 한 마디도 못하겠더라고요. 말 그대로 무능력했죠. 그 때 든 생각이 내 점수는 뭔가 싶더라고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토익'에 매몰 된 사이,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독서과 토론으로 '글로벌 인재'가 갖춰야 할 진짜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만 계속해서 영어 잘하는 국가 필리핀을 따라하려 하고 있다. 세계화의 경쟁력은 영어가 아니라는 것을 필리핀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업이 진짜 원하는 인재상

a 창조적 인간?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창조적 인간?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 애플


사립대학에 다니는 동생은 방학이 되자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살인적인 등록금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 이외의 시간엔 학교 도서관에 앉아 '토익'과 '스팩 쌓기'에만 열중할 계획이라 했다. "인문서적은 언제 보냐?"는 물음엔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는 반문뿐이었다. "그럼 다른 친구들은?"이라는 질문엔 "모두가 비슷하다"며 씁쓸하게 미소 졌다.(참고로 동생은 인문학부에 재학 중이다)

다만 예외가 있었다.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지인이 방학이 되자 '인문서적' 좀 추천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아르바이트 안하냐?"고 물었더니 "박원순 시장의 반값 등록금 이후 부담이 덜 하다"는 답을 했다.

여기서 유념할 자료가 하나 있다. 2012년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에 우리나라에서 등록금이 가장 싼 대학 두 곳, 포항공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만 간신히 포함됐다는 점이다. 과연 이들 대학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재밌는 사실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으로 '도전정신과 창조성', '전문성', '글로벌화', '협력'을 갖춰야 한다고 꼽았다는 점이다. 신입사원들이 가장 미흡한 부분으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아이디어 부재'라고 지적했다.

틀에 맞춘 시험에서 '모범답안'을 잘 찍어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적인 인물을 바라는 것부터 아이러니다. 그러니 이상과 현실이 따로 노는 한국사회를 뒤로하고, 10억만 생기면 다들 당장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곳은 한국보다는 '덜 피곤'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답은 명확하다. 전경련의 발표처럼 기업이 원하는 '진짜 인재상'이 구현되게끔 우리사회의 방향을 설정하면 된다. 우선 이 땅의 청춘들이 숨 쉴 틈부터 마련해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점수로 말하는 '토익'부터 없애면 된다.
#토익 #스티브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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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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