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은 선생님의 책 <왜 학교는 불행한가>의 표지 사진.
메디치
전성은 선생님은, 현재 학교 교육의 구조를 수직 하향식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곧 교육부→도교육청→시군교육청→학교로 되어 있는 네 단계를, 시군교육청→학교, 도교육청→학교, 교육부→학교 등의 두 단계로 줄여 이들 세 유형 중에서 각 도별로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두 기관은 서로를 평가함으로써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학교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가가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통제하는 방법(이명박 정권의 교과부가 즐겨 쓴 고소, 고발이 좋은 예다), 이념 운동이나 사상, 종교 등을 통한 방법도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해 5월부터 시작한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www.promise.com)
***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의식을 개혁할 수도 있다.
전 선생님의 제안은 그 모든 방법들보다 (위에서 소개한) 제도를 통한 해결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를 통한 해결이 시간과 공력이 많이 걸린다는 데 있다. 권력을 잡고 통제하는 행정가나 정치가들이 교육 문제를 법을 통해 빠르고 쉽게 해결하려 하는 것, 권력이 없는 시민운동 단체에서마저도 이를 뒤따르고 있는 것 등
****은 제도 정비나 변화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제도를 통한 해결책이든 법을 통한 문제 해결이든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효과도 있다. 하지만 현장 교사인 나로서는 학교 현장에서의 참여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교 관리자와 교사들의 의식 개혁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학교 민주화 등은, 그것이 선행적으로 구비되지 않으면 그 어떤 개혁 정책도 무위로 끝나버릴 정도로 필수적이고 중요한 사항이다.
혁신 학교 지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학교 현장의 해프닝을 보면 현장의 개혁이 얼마나 중요하지 금방 알 수 있다. 혁신 학교는 경기도교육청에서 김상곤 교육감이 재미(?)를 본 이후 전라북도와 서울시 등에서 크게 확산되고 있는 학교 혁신 정책의 하나다. 최근 몇 년 간 노력을 기울인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혁신 학교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도 크게 놓아졌다.
여기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혁신 학교에 다니더니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성적이 올라가더라, 학교 소문이 좋게 나더라 하는 말들이 오가면서 '혁신 학교'로 재미를 보려는 일부 교장들이 생겨난 것이다. 교사들과의 협의는 형식적으로 거치고 일방적으로 혁신 학교 공모에 신청하여 지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와 수업의 혁신은 물건너간다. 혁신학교가 혁신의 대상이 되는 반어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법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학교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 또한 필수적이다. 특히 교장과 교감, 교사 등 학교 교원들의 자세와 태도는 그러한 변화의 핵심을 차지한다. 담임 교사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 이를 뒷받침해주는 학교 관리자들의 지원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 국가의 탓이 크다. 제도와 구조를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나 지역 탓도 있다. 교사와 아이들은 황금 만능과 경쟁 구도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가족의 책임 또한 그 못지 않다. 특히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나몰라라 하는 부모는(현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정말 문제가 많다.
학교 구성원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교사나 교감, 교장 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교육 문제의 최일선에서 제도와 법과 사회 분위기를 현장에서 고스란히 구현하는 주체들이다. 교육자적인 양심을 가지고, 그러한 양심적인 주체를 길러내야 하는 숭고한 교육 활동의 주인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이러한 일을 잘 해내고 있는가. 혹시 그들은 생존이라는 핑계로 국가와 사회의 냉혹한 논리를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병들어 정작 사회에서 쉽게 상처 받고 쓰러지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져야 하지 않는가. 학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들은 과연 얼마나 노력을 했나.
아이들의 삶은 경제적 이익으로만 영위되지 않는다. 나아가 인간의 온전한 생존은 결코 의식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숭고한 인간 의지, 열정으로 난관에 부딪칠 줄 아는 용기, 나와 다른 타인과 공존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할 줄 아는 내면 등은 결코 돈 몇 푼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열성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 MB 정권에서 교과서 발행은 교과서 다양화과 교과서 선택의 자율성을 명분으로 검인정 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종의 '상위법'인 교육과정이 교과서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남 거창고 직업 선택의 십계: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1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합니다, 2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마음껏 놀기'입니다, 3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성공입니다, 4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 5 교육은 상품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6 대학은 선택이어야 합니다, 7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입니다**** 사교육 걱정이 없는 세상(사걱세)와 같은 시민 모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선행학습금지법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취지과 명분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법적 해결의 한계와 취약점(풍선 효과, 사교육의 음지화 등)을 생각하면 선뜻 납득할 수가 없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
전성은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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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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