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안의 임시정부 관련사진이 호텔안에는 한때 임시정부 사무실로 사용하였음을 알려주는 사진들이 붙어있다.
정윤섭
동유럽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된 지가 벌써 이십년이 넘고 이제는 유럽연합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유로화도 함께 쓰는 등 거의 하나의 유럽 속에 포함되어 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버스를 타고 검문검색 없이 전 유럽을 여행 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하나의 유럽임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유로화를 쓰지 않는 국가도 있지만 유로화는 하나된 유럽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아직도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남유럽 국가의 금융위기로 인한 악화된 경제사정이 말해 주듯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유럽은 아직도 섞이지 않는 용광로 속에서 하나의 주물로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하나가 되기 어렵다는 느낌도 들게 한다.
폴란드로 넘어가기 전 우리는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하는 슬로바키아의 타트라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하였다. 이 숙소는 아주 유서 깊은 건물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 호텔이었다. 2차 대전 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임시정부청사로 사용했던 건물로 유럽에는 역사가 오래된 건물을 호텔로 개조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보는 것도 행운이었다.
버스는 고원지대인 타트라의 산악지대를 지나며 숙소인 호텔로 가고 있었다. 타트라는 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체코 3개국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악지대로 많은 사람들이 겨울 스포츠를 즐기려 오는 곳이기도 하였다.
창밖으로는 흐리고 금방 비라도 뿌릴 날씨였다.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창밖은 밤처럼 어두웠다. 유럽의 전형적인 겨울날씨였다. 유럽은 겨울이 우기고 여름이 건기가 되기 때문에 겨울은 내내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찍 해가 지고 늦게 해가 뜨는 긴 밤의 겨울이 계속된다. 거기에다가 아주 빈번히 흐린 날에 비까지 오니, 겨울은 가장 힘들고 지루한 계절이란다.
이 때문에 겨울에는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 긴 겨울을 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술이다. 그 중에서도 보드카, 보드카는 소련이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폴란드가 보드카 종주국이라는 말도 있다. 폴란드의 보드카는 6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의 전통주라고 하니 자랑할 만하다. 이런 겨울을 넘기려면 독한 보드카 없이는 살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비와 <인생은 아름다워>비는 금방 쏟아질 듯 창밖은 어둡다. 잠깐 눈이라도 붙여 보려고 하지만 이런 때는 잠도 오지 않는다. 버스는 끝없이 고원지대의 숲속을 달린다.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이때 버스에서 비디오로 틀어준 영화가 이제는 고전이 된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였다. 잠이 안 오는 시간을 땜질하기 위해 틀었을 것 같은 이 영화. 어둑한 영화관 같은 바깥 풍경 때문에 시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영화는 1999년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당시 유럽의 분위기를 잘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처음 역설적이게도 코믹영화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 무렵이면 영화에 깊게 몰입하게 된다. 그것은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던 주인공 귀도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독일군에 의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반전이 이루어지면서 부터다.
희극과 비극의 연속된 전개는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의 극한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라는 전쟁의 가장 비극적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마지막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희극적으로 그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갖게 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굉장히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상황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을까. 다음날의 여행지가 오시비엥침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오버랩되어 마음은 진짜로 멜랑콜리(우울)해진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와 같은 서유럽의 화려한 도시에 비해 옛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구권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구권에는 헝가리, 체코와 같은 나라들이 있지만 폴란드를 방문할 때는 왠지 더 기분이 무거워진다. 그것은 2차 대전과 그 전쟁의 상징이 된 아우슈비츠 수용소 때문이다.
이제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바뀐지가 이십년이 넘어가고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회분위기는 아직도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표정없고 딱딱한 얼굴들이 지나간다. 억압된 사회의 이념과 생활이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까지도 긴 시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가 오고 흐린 회색빛의 겨울 유럽여행은 그래서 더욱 무겁다.
이때 대학의 초년생 때 허름한 자취방에서 읽었던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화려한 유럽의 모습도 역사 속에는 그렇게 무거운 상처들이 얽혀있다.
폴란드는 2차 대전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국가 중에 하나다.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도시들이 파괴되고 없어졌다. 독일의 공습으로 큰 도시들은 거의 초토화가 되었다고 한다. 저항이 남긴 결과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체코의 고도 프라하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아 옛 고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찍 독일에 항복한 대가가 이제는 수많은 관광의 수혜를 입고 있다.
독일과 폴란드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앙숙의 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한일 축구처럼 독일과 축구를 하여 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광기의 역사 아우슈비츠 수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