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안 쓰는 물건, 팔지 않아도 돈이 됩니다

[여럿이 함께하는 펀딩 42 ④] 뭐든 나눌 수 있는 '놀라운 공간' 원더렌드

등록 2013.03.14 10:39수정 2013.03.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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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서울사회적경제아이디어대회(위키서울)와 함께 공동기획 '여럿이함께하는 펀딩42'를 시작합니다. 위키서울은 작년 가을부터 시민의 일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공개 모집했습니다. 이중 시민과 전문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시민의제 42선'이 선정됐습니다. '시민의제 42선' 중 몇개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제프 딕슨은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시에서 현대의 소비문화를 이렇게 꼬집는다. 소유하려는 욕망이 우리를 더 빈곤하게 만든다는 역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새로운 소비 흐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재화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교환·임대·활용하는 협력적 소비를 기초로 움직이는 '공유 경제'가 바로 그것이다.

내 집의 남는 방을 민박으로 공유하는 '비앤비히어로(BnBHero)', 차를 빌려주는 '쏘카(So-Car)', 책 놓을 공간과 서로의 책을 공유하는 '국민도서관 책꽂이', 작업 공간과 서로의 인맥,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코업(Co-Up)' 등 다양한 국내 '공유경제 기업'들이 소비문화를 바꾸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새로운 '생산'이랄 게 없고, 물건과 서비스 '공유'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데 있다.

일 년에 몇 번 쓸까 말까 한 물품이라면, 그 물품을 사용하지 않을 때 잠시 이웃에게 빌려주면 어떨까? 집이나 자동차 공유보다 훨씬 쉽고 간편할 듯하다. '쉽고 빠른 놀라운 대여'라는 뜻의 공유경제 기업 '원더렌드'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개인 용품을 빌려 주고, 빌려 쓸 수 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카페에서 원더렌드 김재환 대표를 만났다.

자주 쓰지 않는 물품 공유하고 용돈도 생겨

원더렌드는 작년 8월 중순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다. 현재 회원은 500여 명으로 늘었고, 하루 평균 2건씩 대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성장 속도는 기대보다 더디지만, 천천히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 대표는 일상생활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그는 이삿짐을 싸다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짐을 보고 "쓰지 않고 보관만 하는 물건이라면, 지금 이 물건을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8년간 쇼핑몰 웹 기획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김 대표는 "'오픈마켓' 플랫폼을 빌리되, 판매가 아닌 대여의 모델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원더렌드가 중고시장과 다른 점은 판매가 아닌 '대여'를 한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다시 쓸 일이 있는 물건이므로, 팔지 않고 잠시 빌려주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이를 "합리적인 소비문화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를 계획할 때 미리 장기간 사용할지 아니면 단기간만 사용할지 정하고, 단기간만 사용할 거라면 굳이 사지 않고 빌려 쓰면 됩니다. 새 것 사기가 아깝다면 중고품을 살 수도 있지만, 대여라는 또 다른 대안이 생기는 거죠."


a  원더렌드 김재환 대표

원더렌드 김재환 대표 ⓒ 김혜란


원더렌드에서 물건을 대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빌려주는 사람은 빌려줄 물품에 적당한 대여료를 책정해 사이트에 올린다. 빌리는 사람은 대여료를 내고, 빌려주는 이와 연락해 장소와 시간을 협의한 뒤 직접 만나 물건을 받는다. 중개수수료가 따로 없어서 대여비용은 저렴하다.

현재 원더렌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품 중 하나인 예비군 훈련복은 하루 천원에, DSLR은 1~2만 원에 대여되고 있다. 원더렌드는 '소셜 대여 플랫폼'으로서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주는 기능만 한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유와 나눔'은 한정이 없다. 캠핑용품이나 육아 용품, 노트북, 책에서부터 음식, 주차장, 마술과 같은 재능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을 타인에게 빌려줌으로써 작지만 용돈 정도는 벌 수 있다. 또 이미 생산된 물건을 여럿이 함께 사용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다. 김 대표는 '공유 경제'가 어렵거나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고 말한다. 나누어 쓰고 바꿔 쓰는 '아나바다' 정신이나 서로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두레'처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나눔의 지혜다. 다만 여기에 '네트워크'가 더해졌다.

경험과 지혜 공유하며 관계를 맺는 사람들

사실 모르는 사람에게 '내 것'을 빌려주는 이 시스템은 소셜 네트워크 덕분에 잘 돌아간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평판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믿고 물품을 공유할 수 있다.

또 원더렌드에는 '그룹' 기능이 있어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원더렌드는 거주지·직장·학교 등 지역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장려한다. 분실이나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택배보다 직거래를 권장한다. 현재 30개 정도의 그룹이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CNU'는 충남대학교 그룹이다. 같은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끼리 전공서적이나 노트북 등을 필요할 때 서로 빌려 쓰는 식이다. 취미나 어학연수 정보 등 경험이나 지혜를 공유하기도 한다. '송파구'나 '열매 마을' 그룹 역시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유휴물품을 공유한다.

a  원더렌드 홈페이지 (www.wonderlend.kr) 화면 갈무리

원더렌드 홈페이지 (www.wonderlend.kr) 화면 갈무리 ⓒ 원더렌드 홈페이지 캡처


'공유'를 통해 나누는 건, 눈에 보이는 재화만이 아니다. 교류 속에 유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는 소비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품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때 직접 만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품에 관한 정보를 나누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친다. 소유가 아닌 '공유'는, 단순히 소비와 절약의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에 활력을 선물한다.

이웃끼리 물품을 나눠 쓰고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일상이 풍요로워진다. 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간에 육아·교육용품을 빌려 쓰며 정보를 교환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동네에 누가 사는지 다 알고 있어서 동네 사람들한테 필요한 물건 그냥 빌리면 됐죠. 근데 요즘은 이웃을 서로 모르고 지내잖아요. 필요한 물건을 이웃에게 빌려 쓰고 싶어도 서로 모르니까 빌리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그냥 사게 되는 거죠."

김 대표는 "이러한 대여 모델이 공동체와 관계를 회복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실천하느냐가 관건"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려면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잘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사람들이 공유경제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기란 어렵다. '내 물건을 누군가 빌려 가서 돌려주지 않거나 파손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사실 김 대표도 "분실과 파손을 완벽하게 방지할 대책은 없다"고 말한다. 대신 많은 시민이 공유 활동에 참여하고, 문화로 정착돼 구성원 간 신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개인 사업자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고, 기관과 다른 공유경제 기업이 서로 잘 협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서울시도 공유경제 활성화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공유경제를 활용해 서울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공유도시 서울'을 선언했다. 또 이번 달 22일까지 공유단체·기업 공모를 통해 공유경제 기업을 여러 방면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공유경제는 '수익'을 내는 경제 활동이다. 이런 점에서 이윤 추구보다 사회적 목적을 강조하는 사회적 기업과도 성격을 달리한다. 사실 이는 원더렌드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원더렌드는 현재 중개수수료나 광고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선 수익이 없다. 김 대표는 "지금은 투자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수익모델을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더렌드에서 사람들은 가치를 빌리고, 신뢰와 배려를 돌려준다. 공유경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인이 혼자 재화를 소비·소유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공유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게 커진다.

"처음에는 물품을 창고나 서랍 속에 처박아 두지 말자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창한 목표는 없었어요. 지금은 '지역 공동체'가 사업의 핵심이 됐습니다. 다행히 저희의 취지에 공감하시는 분이 늘어나고 있고, 조금씩 변화를 느낍니다. '공유경제'의 가치를 잘 전달하기 위하여, 구성원 간 유대나 신뢰가 단단한 협동조합원들끼리 물품 공유를 하면서 모범 사례를 만드는 방안을 구상 중입니다. 다음에는 이 사업이 더 성장해서 또 인터뷰할 수 있겠죠?"

한 시간 반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그가 말했다. 훗날 그를 다시 인터뷰하고 싶어졌다.
덧붙이는 글 위키서울(www.wikiseoul.com)에서는 작년 12월 1024개의 시민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시민투표와 전문가심사를 통해 '서울 시민의제 42선'을 선정했습니다. '서울 시민의제 42선'에 당선된 팀들은 아이디어 현실화를 위해 서울시와 하자센터, 사회연대은행, 씨즈, 세스넷 등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 2달 동안 솔루션을 개발을 진행했습니다.이들의 최종결과발표는 3월 29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시민들과 함께 진행될 예정입니다. 시민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원더렌드
- 아이디어소개 : http://wikiseoul.com/ideas/82/#.UT_k_Rwj0Wg
- 홈페이지 : www.wonderlend.kr
#공유 경제 #원더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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