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영업사원, 환자는 '호갱님'...병원장사의 실상

[서평] 김기태 기자의 <병원 장사>

등록 2013.03.27 10:20수정 2013.03.2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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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자 <오마이뉴스>에는 30년째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일흔 한 살 윤아무개 할아버지의 사연이 실렸다. 기초생활수급비 33만 원으로 한 달 생계를 이어가는 윤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병원은 진주의료원이었다. 민간병원에 가면 부담해야 할, 수백 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공공병원에 기대야만 하는 까닭이다.

그런 윤 할아버지의 유일한 치료처인 진주의료원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영논리를 내세워 폐업하려 하고 있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반대의견을 '진주의료원은 강성노조 해방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색깔론으로 매도했다. 현재 경남도는 공중보건의 5명을 제외한 의사 11명에게 다음달 21일 자로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해놓은 상태다. 시민단체와 여론이 반대하는데도 폐업을 강행하겠다는 모양새다.


이는 비단 진주의료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2년 2월 임채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방의료원의 시설을 개선하고 장비를 보강해 공공병원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정부는 지방의료원들을 시장으로 떠밀기 시작했다. 당장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에 대한 운영평가의 주체를 공공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회계법인으로 변경했다. 지방의료원들에게 앞으로는 공공성이 아니라 수익성을 기준으로 운영하라고 강요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

어쩌다가 마땅히 공공성을 띠어야 할 고결한 의료행위마저 이토록 타락해버린 것일까. 그 답을 찾아 발로 뛴 기자가 있다. 그리고 결과를 이 책 <병원장사>를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병원 장사> 겉표지
<병원 장사> 겉표지김병현

'가짜 환자' 실험으로 알아본 대한민국 의료의 현주소

똑같은 환자를 두고 어떤 치과는 충치가 2개라고 한다. 또 다른 치과는 5개라며 때울 재료까지 권해준다. 마지막으로 찾은 치과에서는 '스케일링 정도만 하시면 된다'라고 한다. 이쯤 되니 이미 자신의 상태를 알고 실험에 임했던 저자도 혼란스럽다. 도대체 이 간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치과의 경우, 치료비 중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몫이 적다. 그러다보니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국가기관이 재정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통계가 다른 치료 분야에 비교해 아무래도 부실하다. 결국 치과를 둘러싼 상업화의 현주소는 통계보다는 내부인들의 증언을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 치과병원에 몸 담았던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한 환자에 대해)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보존적인 치료를 고수하자, (병원의) 실장이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하나는 레진(충치를 간단히 때우는 치료를 가리키는 말), 다른 하나는 무조건 인레이(금 등을 이용한 보철)로 하라고 합니다. 인레이는 크기에 따라 14만~18만 원으로 책정돼 있지만 처음 한 달은 무조건 싸게 하라고 합니다. '개원 이벤트'랍니다. 그 이후에는 제 가족이 치료하러 와도 실장이 수가를 결정합니다." (본문 70쪽)


그렇다면 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다른 의사의 증언을 들어 보면 그 해답이 보인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의료 민영화가 되면 (병원이) 코스닥에 등록될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직원들은 병원의 주인이 됨과 더불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 71쪽)

의료 상업화, 문제는 잘못된 의료제도

마치 병원은 영업점이, 의사는 영업사원이, 환자는 '호갱님'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당연히 대형화, 분업화되어 있는 대형병원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KTX가 생기면서 가능해진 원정 진료는 이런 경향에 불을 댕겼다.

병상 규모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휴폐업 현황 (대한병원협회) 소형 병원일수록 휴폐업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중소병원협의회는 이런 현상을 '국내 의료전달체계가 실질적으로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1,2차 의료기관이 맡아야 하는 단순 질환을 3차 의료기관에서 하는 실정'이라 지적했다.
병상 규모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휴폐업 현황 (대한병원협회)소형 병원일수록 휴폐업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중소병원협의회는 이런 현상을 '국내 의료전달체계가 실질적으로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1,2차 의료기관이 맡아야 하는 단순 질환을 3차 의료기관에서 하는 실정'이라 지적했다.김병현

동네병원이 문을 닫는 이유는 두 가지다. 대형 병원들로의 편중현상과 동네의원들 사이의 과당 경쟁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발표한 '요양기관별 외래 진료비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외래 진료비 총액에서 상급종합병원의 비중은 2001년에서 2010년 사이 9.9%에서 17.3%로 늘어난 반면, 동네의원의 비중은 74.6%에서 56.9%로 줄었다. 또한 2011년 폐업한 의원이 1662곳이었지만, 새로운 동네의원 2030곳이 문을 열었다. 동네의원이 챙길 수 있는 전체 파이는 줄어들고 있지만, 정작 의원들의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동네의원들이 겪는 시련에 비례해서 대형병원들의 몸집은 불어나고 있다. 특히 빅5라 불리는 아성을 지켜내기 위한 병원들의 행태는 마치 의료생태계에 군림하는 황소개구리를 보는 것만 같다. 저마다 암센터, 심장병센터 등을 지으며 외형을 확장하고, 고가의 장비를 경쟁하듯 도입했다.

당연히 병상의 수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201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병상자원 관리방안'을 보면, 2009년 우리나라의 병상은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전국 병상 수는 33만 개로 적정 규모인 29만 2600병상보다 많다. 지금부터 지어지는 모든 병상은 '잉여'로 봐도 무방한 셈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보고서는 2020년 국내 병상의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55만 5천 개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그래도 여유분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을 소비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그런데 의료시장은 조금 특수한 부분이 있다.

만약 자신이나 가족에게 의사가 입원과 수술을 권한다면 쉽게 뿌리칠 수 있는가. 대부분의 전문분야에서 마찬가지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분야에서 환자의 의사 의존성은 거의 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가 환자의 의료 서비스 공급량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쉽게 풀자면, 보건의료계에 떠도는 '병원을 지으면 입원실이 차게 마련이다'는 소리가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병원들의 과잉 경쟁으로 인한 비용을 채우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의료계 군비 경쟁 (Medical Arms Race)

1960~70년대 미국의 병원들은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호텔과 같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시설을 갖추고, 첨단 장비들을 서둘러 도입했다. 이런 경향은 병원 사이의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두드러졌다.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면모인 크고 쾌적하며 고가의 장비를 갖춘 병원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병원들은 그 동안 쏟아 부은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진료비를 올린다. 이는 다시 의료비 지출을 늘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다른 산업에서 경쟁이 심하면 가격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경쟁이론과는 차이가 있다. 40여 년 전 미국 땅에서 벌어진 '레이스'는 대한민국에서 현재진행형이다. ( <병원장사> 본문에서 요약발췌 )

병원들은 지금 '타락하느냐, 버림받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이 양갈래 길에 다른 길 하나를 내어주기 위해서는 결국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 책의 말미에 있는 서울대 김창엽 교수의 글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공공의 권력과 지배를 국가나 정부가 직접 의료기관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으로 좁히지 말자.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국립대병원을 비롯해 이른바 공공병원의 행태가 민간병원과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공공성은 단순히 누가 소유하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사안이다.

공공의 권력과 지배가 강화되려면 서로 수렴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공공기관을 '재(再)공공화'하는 것(공공기관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새삼 다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민간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본문 261쪽)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창출하려는 불순한 동기가 작동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전 세계 역사에서 의료체계의 변화와 발전은 의료인들의 자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변화를 이끄는 것은 각성하고 행동한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공공의료, 그리고 진주의료원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하는 이유를 극명히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병원 장사-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l 김기태 지음 l 씨네21북스 펴냄 l 2013.03 l 1만3천원

병원장사 -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김기태 지음,
씨네21북스, 2013


#병원 장사 #김기태 #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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