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우 평택사회경제발전소 대표
유혜준
이은우 평택사회경제발전소 대표를 6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07년 4월 7일은 미군기지확장저지 운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던 대추리 주민들이 이주합의를 하고 대추리를 떠나던 날이었다. 그날, 대추리에서는 '매향제'가 열렸다. 문정현 신부와 대추리 주민들은 통곡을 하면서 '매향제'를 진행했고, 나는 종일 그 현장에 있었다.
그 날, 이은우 대표와 대추리에서 잠깐 마주쳤다. 당시 그는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였다. 대추리 주민들이 이주합의를 하고 난 뒤인 2007년 3월에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그는 "한편으로는 비참하고, 한편으로는 죄송하다"는 심정을 밝힌 적이 있다.
대추리 이후 평택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사태가 전국을 뒤흔들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굵직한 사안이 터지면,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지만 지역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지역의 현안은 지역시민단체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소한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역할이 가능한데 지역을 뛰어넘는 현안에 대해서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이은우 대표의 말이다. 1995년,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준비모임부터 참여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평택 시민운동을 주도한 이 대표는 자칭 '평택 시민운동 1세대'다. 대도시가 아닌 도농복합지역의 특성상 평택에서의 시민운동이 쉽지 않을 것은 지역을 잘 모르는 이들도 짐작할 수 있을 터.
지난 2일, 평택사회경제발전소 사무실에서 이은우 대표를 만나 평택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보수 색채 강한 평택, 시민운동 하려면 더 많은 희생 필요" - 지난 2012년, 4·11총선에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 선거운동을 했다. 결국은 중도에 뜻을 접었는데?"지난해에 상당히 고민이 많았다. 지역에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정치집단(민주통합당)에 (활동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용만 당한 결과가 되었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 정치를 너무 막연하고 쉽고 단순하게 생각한 게 아닌지?"순진했다. 준비가 미흡했던 부분도 있고, 권력의지가 약했다는 생각을 정리를 하면서 깨달았다."
총선 출마와 관련, 이 대표는 당시 출마배경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시민운동가의 활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지난 1995년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준비모임에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자신을 '평택시민운동가 1세대'라고 지칭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10년 이상 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할 수 있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인 데다가 지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안들이 계속 평택에서 일어나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것도 한 원인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부분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싶다,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계속했다."다른 하나는 박원순 서울 시장이었다. 박 시장의 서울시장 당선은 시민운동활동가들에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염태영 수원시장도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의 영역을 정치권으로 잘 확장한다면 '생활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서 혁신과 통합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유도·권유했고, 그는 기대감을 안고 합류했다. 하지만 끝내 그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정치판에 대한 환멸을 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예비후보로 출마의사를 밝힌 그는 매일 선거비용 내역을 밝히는 메일을 유권자와 지인들에게 발송했다. 투명한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출마 의지를 밝힌 뒤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대표를 사퇴한 그는 지난해 연말, 다시 시민운동으로 돌아왔다. 평택사회경제발전소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2월 4일 열린 창립총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