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분신했던 비정규직 "살아서 투쟁하는 게 낫다"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 전환 요구하며 분신한 노동자들

등록 2013.04.17 18:26수정 2013.04.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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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 도중 분신한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드림산업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황인화(당시 34)씨가 2010년 11월 20일 오후 4시 20분경 울산공장 정문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 도중 무대 위로 뛰어올라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황씨는 불에 휩싸인 채 무대 뒤쪽으로 떨어졌고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인근 울산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동료 노동자들이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 도중 분신한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드림산업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황인화(당시 34)씨가 2010년 11월 20일 오후 4시 20분경 울산공장 정문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 도중 무대 위로 뛰어올라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황씨는 불에 휩싸인 채 무대 뒤쪽으로 떨어졌고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인근 울산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동료 노동자들이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지난 2010년 11월 20일 오후 4시 20분경,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 마련된 임시무대 위로 갑자기 한 남성이 뛰어오르더니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불은 삽시간에 이 남성의 온 몸으로 번졌고 남성은 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불이 온 몸에 붙은 것에 아랑곳않고 "노동자는 하나다"를 외쳤다. 주위에 있던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옷가지 등으로 불을 꺼고 타들어간 옷을 벗기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는 곧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화상전문병원인 부산 북구 베스티앙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이곳에서는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던 중이었고, 담장 너머 현대차 공장 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 백명이 '대법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5일째 농성 중이었다. 당시 노동계가 농성 중인 비정규직들을 지지하기 위해 결의대회를 열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 16일 오후 3시경, 기아차 광주공장 사내하청분회(비정규직노조) 김아무개(36) 조직부장이 역시 시너를 몸에 붓고 분신하면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그는 현재 전신에 2~3도의 화상을 입고 서울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치료 중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동차 생산공장의 비정규직이라는 점, 둘 다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생각만 해도 끔직하고 겁나는 분신, 그들은 왜 이처럼 목숨을 걸고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분신을 택했던 것일까

분신했던 노동자 "정규직 전환이라는 우리의 정당성 알리고 싶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그동안의 판결을 뒤엎고 현대차 비정규직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후 10년 가까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무됐다. 하지만 회사 측은 다시 법원에 상고하고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등 시간끌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 대법의 판결은 "자동차 생산공장 특성상 불법파견"이라는 것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분신을 한 비정규직들이 외친 이유도 여기 있었다.


그 해 11월 15일, 그 연장선에서 현대차가 울산공장 시트공장 내 하청업체인 동성기업의 폐업을 강행하자 비정규직노조는 반발했다. 그날 폭력적 진압이 있자 비정규직노조는 전격적으로 현대차 울산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 하청업체인 드림산업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황인화(37)씨도 11월 15일부터 울산공장 1공장에서 비정규직 조합원 동료들과 함께 농성에 동참했다. 하지만 17일 아침 건강이 좋지 않은 노모를 만나기 위해 공장 밖으로 나왔고, 이후 그는 공장 안으로 다시 들어오려고 시도했지만 경비가 강화돼 공장 밖에서 나머지 동료들과 농성을 진행 중이었다.


황씨는 11월 20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때 미리 생수통에 시너를 넣은 후 몸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얼굴과 목, 가슴, 등에 3도 화상을 입어 6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통원치료를 하고 있는 그의 얼굴과 온 몸에는 화상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 비정규직의 분신 소식이 알려진 후 1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분신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준다"며 "다치고 난 후 살아서 투쟁해야겠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황인화씨는 지금 예전에 다니던 현대차 하청업체에서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회사 측과 정규직 전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는 분신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대법원이 불법파견 판결을 내려도 회사 측은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동료들을 살리고 비정규직노조와 내가 요구하는 정규직 전환이 맞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분신을 택했다"고 말했다.

-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분신을 할 당시 겁이 나지는 않았나
"왜 아니겠는가. 분신하기로 마음 먹은 후 겁도 나고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10년간 싸워오면서 회사 측이 얼마나 독한지를 알기에 내가 선택할 길은 분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아프지 않았나? 어려서부터 겁이 없는 성격인가?
"분신하면 그 아픔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아픔…. 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청년이었다. 단, 어릴 때부터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런 점은 있었다."

- 지난 14일 기아차 광주공장에서도 비정규직노동자가 분신을 했는데….
"내가 경험자로서 그 고통을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치료 과정에서도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살아서 투쟁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 지금 심정은 어떤가.
"비정규직은 철폐되어야 한다. 지금 마음은 분신할 때와 똑같다. 정규직과 같이 한쪽 바퀴를 조립하는 비정규직이 왜 차별을 받아야 하나. 차별은 사람의 존엄성마저 파괴하는 것이다. 대법원도 판결했는데, 반드시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

나는 당시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고 분신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살아서 동료들과 투쟁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도 아마 불법파견을 없애는데 매진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다.우리의 뜻이 옳다는 것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다."

한편 그는 지난 2010년 11월 20일 분신한 후 21일 오전 병원을 찾은 노모에게 "엄마 걱정하지 마. 협상한다고 농성 풀면 안 돼. 6개월 농성하면 이긴다"며 "농성장이 너무 추우니 조합원들에게 침낭을 꼭 넣어줘"라고 말했었다.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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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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