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자신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만나 면담을 갖던 중 임성준(11) 군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03년생인 성준 군은 돌 이후 발병한 급성호흡부전증과 간질성폐렴으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고 있다. 성준 군의 가족은 옥시싹싹, 애경가습기메이트, 홈플러스 가습기살균제 등을 사용했었다.
이기태
아들 임성준(11)군과 함께 온 권미애(37)씨도 진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했다.
"아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았어요. 작년까지는 목에 산소호흡기를 꼈고 지금은 코에 낀 상태에요."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성준군은 첫 돌이 지나고 나서 단순 감기로 병원을 찾았다가 원인 미상의 폐렴, 폐섬유화, 급성 호흡부전증 등으로 증세가 악화되고 말았다. 이후 지금까지도 산소호흡기를 달고 생활하고 있으며 호흡이 가빠서 오래 걷지 못해 유모차를 타고 다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했다.
성준군은 이날도 어김없이 유모차에 앉았다. 유모차가 작은지 유모차 밖으로 성준군의 어깨가 삐져나왔다. 면담 장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낯선지 신기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집에서 가져온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지루함을 달래는 성준 군은 영락없는 11살 소년의 모습이었다.
2011년 8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확인된 뒤, 피해자들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한 정부 대책 등을 촉구해왔다.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몇 명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복지부를 비롯한 환경부 등 관계 부처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제대로 된 조사나 정부 차원의 구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해도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최근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언론들이 다시 이 사태에 주목하고 나서야 이번 면담이 성사됐다.
이날 면담에는 가습기살균제로 아이, 아내, 손녀 등을 잃은 피해자 가족들도 함께 자리했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복지부 장관에게 범정부차원적 대책 마련을 비롯해 ▲중단된 피해조사 재개 ▲ 적극적인 피해자 찾기 ▲중증환자에 대한 긴급 의료지원 및 생활지원 ▲판매 기업에 대한 처벌 등을 요구했다.
특히 피해자들은 현재 활동을 중단한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재가동되고 피해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진 장관에게 호소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말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의 중증폐질환 원인으로 지목된 지 1년이 훌쩍 넘어서야 가습기살균제 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폐손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의심사례로 접수된 사례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폐 CT 검사 등의 후속 조사를 벌이겠다는 조사위원들의 뜻을 복지부가 거부하면서 조사위원들이 일괄 사퇴하게 됐고, 이로 인해 관련 조사는 중지된 상황이다.
진영 장관 "가슴 아프고 죄송하다... 최선 다해 도울 것"진 장관은 피해자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피해자 이름과 상황 등을 직접 메모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진 장관은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사퇴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 너무나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복지부 장관으로서 정부를 대표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진 장관은 "장관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피해 보고를 받았다. 바로 피해 가족들을 뵙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국회 일정으로 늦어진 감이 있다"며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파악해 그에 대한 대처를 해야 하는데 다른 부처가 관련돼 있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진영 장관은 면담에서 복지부에서 꾸린 폐손상조사위원회를 통한 피해자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총리실 주관의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피해자 대책이 검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아이를 잃은 최승운(39)씨는 면담이 끝난 후 "오늘 분위기는 전체적인 얘기만 듣고 마는 수준이다. 어떠한 확답이나 약속이나 이런 건 없었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는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발생한 건 정부의 책임이고 3년 동안 방치한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하고 거기에 대한 입장 표명을 먼저 해야 한다고 했으나, 장관은 '그건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적잖이 실망했다"며 "설상 복지부 장관이 아니더라도 입장 표명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말만 설왕설래하는 건 의미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 조사위를 언제 하자는 게 실질적인 첫 단계다. 조사위를 언제 열지는 조금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5월 첫 주까지 공식적인 회의를 한다는 게 없으면 사실상 말만 하고 시간끌기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시 판단을 해서 액션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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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가정이 박살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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