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불합리한 '갑을(甲乙)'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국회 내 대표적인 '을'인 인턴들은 부당한 대우에 냉가슴만 앓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텅 빈 제2의원회관의 한 의원실 내부 모습이다.
연합뉴스
업무 내용 : 정책업무 지원 및 의원실 전체 업무 지원우대 조건 : 국회 보건복지위 유경험자 또는 보건복지 관련 유경험자 우대근무 조건 : 국회 사무처 규정에 의한 보수 지원지난 8일 국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안철수 의원실 인턴 채용 공고 내용이다. 이를 본 한 의원실 인턴 A씨는 씁쓸함을 느꼈다. 그는 "공고대로라면, 안철수 의원실 인턴은 정책을 포함해 모든 업무를 하면서도, 월 120만 원가량을 받게 된다"며 "'새 정치를 강조하는 안철수 의원실 인턴도 다른 국회 인턴들 처지와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정치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불합리한 '갑을(甲乙)'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국회 '슈퍼 을'인 인턴들은 차별적인 비정규직 대우에 냉가슴만 앓고 있다. 국회 인턴제도는 1999년 우수 인력에 대한 의정활동 체험 기회를 부여하고,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한 의원실당 2명의 인턴을 채용하기 때문에, 국회 의원회관에는 600명의 인턴이 있다.
하지만 국회 인턴제도가 "적은 돈으로 인턴을 부려먹는 제도"로 전락했다는 게 인턴들의 호소다. '슈퍼 갑'인 국회의원들이 인턴들의 명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인턴들은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처럼 '을의 반란'을 꿈꿀 수 없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의원실마다 다르지만, 일부 의원실에서는 인턴을 노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턴 월급 120만 원으로 데이트 신청도 못해"최근 인턴 딱지를 뗀 한 의원실의 B 비서는 기자에게 올해 1월 인턴 월급 명세서를 내보였다. 실수령액은 121만8720원. 기본급(120만 원)과 시간외 근로수당(13만7760원)에서 소득세와 4대 보험료를 공제한 금액이다. 시간외 근로수당이 지급되기 전인 2011년까지 실 수령액은 109만 원이었다.
B 비서는 과거 2년여 동안 인턴을 하면서 "참 서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인턴은 정책을 만들고 질의서를 쓰는 등 의원 보좌진과 같을 일을 한다, 사진 찍고 SNS를 관리하는 것까지 하면 더 더양한 업무를 한다고도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별정직 공무원인 보좌진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서울에서 생활하기 힘든, 턱없이 적은 월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의원실의 C 보좌관은 "과거 인턴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외국 유학을 다녀온 후 2007년 한 의원실 인턴으로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었지만, 입법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1년 11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국정감사와 대선까지 경험했다. 각종 홍보동영상을 만들었고, 질의서를 썼다. 정책 자료집도 손수 만들었고, 심지어는 법을 만들기 위해 입법조사처에 낼 입법의뢰서를 만들었다. 2008년 12월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미FTA 비준안을 상정하기 위해 국회 외통위 회의장을 걸어 잠그면서 몸싸움이 일어났을 때, 가장 앞장섰다. 소화기 분말가루 범벅이 됐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적은 월급과 차별 대우였다. 당시 서울 영등포구에 50만 원짜리 월세방을 얻어 지냈다. 전기·수도요금 등을 내고 나면, 한 달 생활비는 40만 원이었다. 생활이 팍팍해졌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중고차를 받았지만 기름값이 없어 걸어다녔다. C 보좌관은 "비참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인턴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윤창중 사건'과 같은 성추문 사건은 국회에서도 발생했다. 올해 초 한 여성 의원실에서는 보좌관이 인턴을 성추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인턴은 의원에게 후속 조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인턴은 의원실에서 나왔다. 한 보좌관은 "인턴은 권력 구조의 최하부에 있기 때문에, 권력 관계에 따른 성범죄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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