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공선옥 지음│창비 펴냄│2013년 4월│1만3천원)
창비
나는 1995년, 강원도 춘천 102보충대에 입대하여 신병교육대에 배치되었다. 첫날 밤, 내가 속한 내부반 조교는 대뜸 전라도 놈들은 기립하라고 소리치며 머리를 박으라고 했다. 6주 훈련 동안 우리는 수시로 기합을 받았는데, 같은 말이라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동료들은 조금 더 모질게 당했다.
제대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문득,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과 달리 서울말을 곧잘 쓰는 것을 발견했다. 언젠가 광주 태생의 선배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내게 '넌 아직 광주를 모른다'며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다.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2013.4)의 주인공 '정애'의 친구 '옥택'은, 서울서 살다 설 명절에 고향집에 들렀는데 친구들이 서울 말투를 흉보자, 그는 이렇게 하소연한다.
"그것이 그러니깐, 서울서 전라도 말을 쓰거나 전라도 사람이란 것이 밝혀지면 사람들이 다른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나는 살기 위해 내 고향 말을 버렸던 거라구."(본문 190쪽)맞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공선옥의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1970년 무렵부터 5·18이 있던 1980년 전후 시대의 숱한 폭력에 스러져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소설은 '1980년 광주'를 공들여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전후 광주를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애'와 '묘자'다.
'정애'의 아버지는 투전판에서 돈을 잃고 일도 잃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웠던 아버지는, 결국 말 못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나야 했다. 아버지가 믿을 만한 사람은 큰딸 '정애' 밖에 없었다. 밑으론 철없는 동생들 '순애'와 '명기', 세살 짜리 막내 '명애'가 있었고, 어머니 뱃속엔 곧 태어날 생명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뒤 '정애'는 고달팠다. 각 가호에 일인씩 새마을사업에 차출되어야 했기 때문에, 정애는 시멘트 반죽 함지박을 머리에 매고 날라야했다. 어느 한밤 중 도둑이 들며 헛간 뒤 돌담장을 부수었고, 아버지가 애지중지 하던 돼지는 돌담에 깔려 즉사했다. 곤히 자던 닭들이 지붕 위로, 산 위로 도망쳤다. 동네 이웃 '정샌'이 닭을 몰아 갔고, 새마을이발소 '박샌'이 아버지가 꿔간 보리쌀 한 가마니와 퉁치며 죽은 돼지를 끌고 갔다.
연쇄점 주인 '김주사'는 동생 '순애'의 성을 유린하고 그 값으로 하드를 줬다. 연쇄점 마당에서 부로꾸 찍는 남자는 '정애'를 강간했다. 그리고 '순애'는 잠만 자고 기력을 잃어갔다. 순애가 '깨구락가치' 죽어갈 때, 아버지가 전보를 받고 돌아왔지만 너무 늦었다.
결국 '순애'를 땅에 묻은 아버지는 '정샌'을 죽이려 찾은 새마을이발소에서 자신이 먼저 칼에 맞아 죽고만다. 마침 이발을 하러 왔던 '종택'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끌려갔다. 어머니는 출산을 하다 죽고, 갓 태어난 쌍둥이도 죽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정애'의 집을 이장이 사용하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쥐어주고, '정애'와 그 식구들을 도시로 쫓아냈다. 5·18이 있기 직전의 일이다.
가난한 '정애'의 곁에는 오직 옆집 사는 벗 '묘자'의 위로만 있을 뿐이었다. '정애'가 광주로 떠나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묘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의 식당을 찾아갔다. 엄마는 재혼했으나 다시 과부가 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묘자'는 5년 전 '5·18 또라이'였던 '박용재'를 만나 결혼한다. '용재'는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던 봄'까지 카센터에서 일했으나,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이후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꺼리는 '폭도'였던 까닭이다.
'용재'와 '묘자'는 가난했고 '용재'는 점점 미쳐갔다. 5년 전 그때, '용재'는 광주시민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상무대, 교도소, 삼청교육대를 거쳐 검옥에 갇혔다. 그는 삼청교육대 이야기를 꺼낼 때면 온몸이 얼어붙고 딱꾹질을 하곤 했다. 그리고 라일락이 피던 4월이 되면, 군인들에게 이유없이 당했다는 5월이 다가오면 몸살을 앓거나 이상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