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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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인 이수진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웅진지식하우스)는 '개개인의 서로 다른 취향에 대한 몰이해가 전체를 향한 폭력으로 발전하게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인데,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남과 다르면 안 되는 것처럼 내면화되었던 '전체성'에 균열을 내는 '다름'에 대하여, '전면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심사평을 읽는다.
'개성'이라는 말도 있지만, '취향'이라는 말은 개성보다 훨씬 사소하고 내밀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개성이란 말은 이미 사회화 되어버려 집단적인 느낌마저 주는 데 반해, 취향은 매우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속살이다.
김경의 에세이집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도 취향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취향은 인간 그 자체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며, '자아'라는 말은 버겁고, '영혼'이란 말은 만질 수도 없고 증명할 길이 없으니, 취향이란 '영혼을 표현하는 풍향계'라고 표현했다.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을 볼 수도 증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취향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기호나 규율이 아무리 방해해도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재밌는 것,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과 함께 삶을 더 잘 즐기기 위한 것이라 한다.
책에는 사랑에 대한 취향, 패션에 대한 취향,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취향, 사람에 대한 취향, 그리고 취향의 사회적 관계 등 총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17년간 패션지에서 근무한 에디터답게 놀랍도록 재치 있는 문장과 풍부한 지식으로 삶과 취향에 대한 통찰을 채우고 담아냈다.
진짜 취향은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 좋은 것정말 사랑도 예술도 다 취향일까? 저자는 결국 취향이라고 단언한다. 매우 다양한 예술가들과 작품들을 등장시키며 결혼에 대하여, 열정, 관계, 취향에 대해서, 외모와 유혹,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펼쳐놓는다. 결혼을 말하기 위해 그리스인 '조르바'가 나오고, 베트남의 대문호 응우옌주의 시도 소개한다.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과 캐서린 햅번의 멋진 문장도 보여준다.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에 나오는 헬렌과 동성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영화 <메디슨 카운디의 다리>에서 중년의 연인을 묶었던 예이츠의 시, 산도르 마라이의 책 <열정> 속에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였지만 불행하게도 음악에 대해서는 아내와 도무지 취향을 나눌 수 없었던 남자 헨릭 이야기, 그리고 <타인의 취향>이라는 영화에서 서로 취향이 달라 경멸하고 무시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취향을 결합하는 과정도 보여준다. 저자는 말한다.
(<타인의 취향>에서) 클라라와 카스텔라의 아내에게 취향은 '남과 나를 구별 짓기 위한, 그러니까 내가 남보다 좀더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잣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취향은 자기 자신을 틀 안에 가두고 주위 사람들마저 숨 막히게 할 뿐이다.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진짜 취향은 '남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누가 뭐라 하든 나에게 좋은 것'을 의미한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본문 23쪽)
외모에 대한 취향 중에 하나인 외모지상주의의 폭력에 대처하는 법이랄 것까진 없지만, 저자는 제법 통렬하게 '보기 좋은 못생긴 여자'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단단한 여자. 못 생긴 게 안 됐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고 도리어 빛이 나는 여자 말이다. 저자의 통찰이 빛나는 다음 말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외모의 미추를 떠나서 진정으로 못난 여자들은 자기 자신을 조금도 성장시키지 않는 여자다.아무리 아름답게 생겼어도 성장이 멈춰버린 여자는 마네킹처럼 식상하다. 그러나 어찌 여자에게만 한정된 말일까. '여자' 대신에 '사람'을 넣어도, '남자'를 넣어도 될 터이다. 그러니 못생겼다고 해서 착할 필요도 없고 정숙할 필요도 없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게 굴 필요도 없고, 아름다움이 주는 특권을 일찌감치 포기하고도 잘 먹고살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무장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울림이 있다.
물론 저자는 섹스에 대한 취향도 슬쩍 넣어두었다. 그리 깊지는 않지만 저자의 솔직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향이 맞아서 저자가 남편을 만나 강원도 평창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삶의 한 모습을 열어 보일 때 더욱 재미가 있다.
'취향의 합치는 두 영혼에게 통일을 체험하게 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는 책 속의 구절을 인용하며 서로를 품어주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재미. 남편을 '신비로운 바보'라고 좋아 죽겠다는 듯이 말할 땐 닭살이 좀 돋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게 취향이니까.
소박함과 촛불의 미학사랑 다음엔 패션이다. 패션지 에디터 경험이 풍부한 저자의 패션에 대한 문장은 현란하기까지 하다. 명품과 취향에 대한 사유. 취향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고, 자기만의 감수성과 미적 직관으로 스스로 재발견하는 가치관인데, 대부분의 명품족들은 그걸 돈으로 해결하려는 오류를 범한다고.
그러면서 명품 취향에 대한 대안으로 '소박함'을 강조한다. 소박함이 고가의 명품백보다 훨씬 고상하고 높은 가치라는 약간의 확신만으로도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무릇 모든 소박함이란 화려함을 넘어서는 경지임을 아는 것은 거의 깨달음의 수준에 가까우니, '소박함'을 강조하는 것은 또 얼마나 소박한가.
옷이란 뭘까. 저자는 옷이란 그 대상이 개인이든 대중이든 사람들에게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도구'라고 했다. 현대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이나 작가 오스카 와일드, 비틀즈,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 등의 가수들도, 그리고 카사노바도 모두 패션마니아였다 한다.
그런데 저자는 예술가 세바스찬 호슬리의 철학인 '패션보다 스타일'도 소개하면서, 주류에 편입되기 싫어서 일부러 옷을 거지같이 입는 자유는 이제 지나가고, 주류에 끼지 못할까봐 '노스페이스'를 교복처럼 입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브랜드가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획일화시키는 현실을 비틀기도 한다.
패션에 이어 라이프스타일 취향에 대한 저자의 글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촛불의 미학'이다. 저자의 글머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집집마다 환하게 켜져 있는 한국의 형광등을 혐오하게 됐다.이런 취향은 저자가 2000년에 네팔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에 생긴 것이라는데, 소박함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되면서 문명의 과잉소비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형광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집 안의 형광등을 모두 떼어내고, 종이등에 불투명 알전구를 달아 사용하고 있다 한다. 그리고 촛불을 자주 켠다고.
일상의 모든 것을 대낮처럼 환한 불빛 아래서 있는 그대로 낱낱이 다 본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삶의 누추함은 적당히 시각적으로 감추고, 대신 청각이라든가 후각, 촉각 같은 다른 감각을 좀 더 사용할 수 있는 은은한 조도 아래서라면 사람들은 더 관대해지고 또 관능적으로 변할 수 있다. 어머니 배 속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건 물론이고.(본문 130쪽)아무래도 초를 좀 사 두어야겠다. 촛불 켜고 잠자다 집에 불 낼 일만 조심하면 촛불 아래서 나누는 이야기도 풍성할 테고. 그리고 형광등 대신 은은한 등도 달아볼 일이다. 획일화된 형광등 불빛이 아니라 장소에 따라, 공간에 따라 다양한 빛의 얼굴을 만날 수 있겠다.
취향의 불온함을 위하여<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에는 이렇게 다른 취향, 다른 인생들이 풍부하게 열려 있다. 지금까지 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타인의 취향'을 통해 나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다른 취향, 타인의 취향과 만나면서 내 삶이 더욱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꾸밈과 비움의 취향이나 달리기와 걷기의 취향, 집과 시에 대한 취향, 그리고 채식과 육식의 취향, 아울러 예술과 철학,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삶과 사회의 양상이 달라지기도 한다면 다분히 정치적인가. 그러나 소개팅을 나가면 덮어놓고 '박정희를 좋아하는 부류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저자의 취향대로 보자면, 세상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지 않은 게 어디 있는가.
조지 오웰이나 패티 스미스, 밥 딜런, 카텔란, 피나 바우쉬, 수전 손택, 자코메티, 김기덕과 싸이, 주성치와 유세윤도 저자가 우리에게 내미는 취향의 다른 이름들이다. 그들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관점과 시각의 낯섦을 맛볼 수 있는데, 저자가 안내해주는 이런 만남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건 '불온함'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꿈을 꾸는 몽상가들에 의해 세상은 한 뼘씩 진보했음을 잊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것이 저자가 <돈키호테>의 한 구절을 우리에게 새겨주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이며,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에서(본문 294쪽)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김경 지음,
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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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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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여, '보기 좋은 못생긴 여자'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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