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희 교수의 중국현대사 강의>
궁리
중국은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후 중국 역대 왕조는 "'하늘의 명'을 받은 '하늘의 아들'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였다.
1911년 중국 '신해혁명'을 통해 마지막 봉건왕조인 청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중국은, 인민은 아직 민주주의를 실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쑨원은 "자신이 이끄는 중화혁명당이 정권을 잡으면 당의 지도 아래 중국 인민을 군정기(군사통치기)를 거쳐 훈정기(교육 통치기)로 이끈 뒤 헌정기(공화주의 헌법)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3단계론을 제시"했다.
이처럼 중국 인민은 반제·반봉건 깃발을 들었지만 아쉽게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중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신해혁명은 현재진행형으로 '미완의 혁명'이다. 하지만 중국이 나아가야 바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인민의 역량을 기른다면 중국 역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공화정을 표방했던 난징정부는 중국 정치사에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을 남겼으며, 이로 인해 이상으로만 여겨졌던 서구식 민주공화정이 이제는 현실 속에서 실해야 할 구체적 목표가 되어버렸다."(41쪽)역사가 진보하려면 혁명의 대를 잇는 이들이 부족한 것은 채우고, 역량을 길러야 하지만 쑨원이 떠난 중국은 "군벌들 간 암투와 전쟁"을 치렀고, "세력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 농민들을 수탈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민중의 지지를 잃"었다. 인민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이들에게 민주주의 개념이 자리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공화정으로 이행 실패....쑨원 후계자 쟝졔스는 군벌을 토벌했고 군정을 완료했지만 또 다른 적인 공산당과 20년 이상 합작과 토벌을 병행하다가 민주공화정은커녕 1949년 마오쩌둥 중국 공산당에게 본토를 내주고 만다. 물론 장제스는 1928년 10월 '훈정 강령 6조'로 군정기를 지나 훈정기에 들어섰다고 했지만 외양만 그럴듯할 뿐 민주공화정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아니라 군정으로 후퇴하는 것에 불과했다.
"외양만 놓고 보자면, 적절하게 균형이 잡혀 있어 별로 나무랄데가 없어 보이지만, 결국 이것은 유능한 현인(국민당)이 무능한 우민(국민)의 정치적 권리를 도맡아 대행하는 것에 불과했다(중략) '훈정'지배는 소련 공산당의 일당독재체제의 정치적 효을 학습한 결과이기도하고, 중국의 전통적인 '왕도' 정치를 재현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른바 훈정 시기의 실질적 내용은 국민당 일당 독재에 지나지 않았다."(148쪽)장제스는 1949년 타이완으로 쫓겨난 후 '중화민국'을 세웠지만 민주공화정은 아니었다. 1975년 죽을 때까지 '총통'으로 대만을 통치했기 때문이다. 그럼 장제스를 몰아낸 마오쩌둥은 민주공화정을 세웠을까?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중국은 아직도 공산당 일당 독재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인민이 주석을 뽑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밀실에서 '정'한다.
마오가 장제스를 타이완으로 내쫓고 1949년 10월 1일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것은 중국 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1840년 아편전쟁 이래 근 100년간 이어져오던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승리였고, 2000년간의 봉건왕조 통치의 종식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쑨원이 반제·반봉건 깃발을 든지 38년에 이룬 쾌거였다.
하지만 마오 역시 쑨원과 장제스와 별 다르지 않았다. 그가 진행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밑으로부터 혁명이 아니라 최고통치권자와 공산당 일당 독재가 강제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1966년 8월 '프롤레타리아혁명에 관한 결정 16개조'가 발표됐는 데 놀랍게도 15조와 16조에는 언론과 표현, 결사의 자유가 보장됐다.
"16조에 규정한 자유는 뒤에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의 대민주의 4대 자유, 곧 '자유롭게 말할 권리, '자신의 견해를 발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다른 사람과 단결할 수 있는 권리', '대자보를 쓸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논쟁할 수 있는 권리'였다."(330쪽)이 정도면 민주공화국 헌법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대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이들은 '홍위병'들이었다. 홍위병들은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마우쩌둥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비판"했다. 마오가 통치한 중국은 인민을 교화 대상으로 삼는 '훈정'일 뿐이다. 아니 더 후퇴했을지도 모른다.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인민을 먹여살려만 주면 된다"고 했던 덩샤오핑 역시 별 다르지 않았다.
중국, 진정한 '인민공화국'이 될 수 있을까?1989년 '톈안먼 사태'가 이를 방증한다. 덩샤오핑은 인민이 주인되는 중국을 원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 책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책은 1997년 홍콩 반환까지 다뤘는데 8년 전 일어난 '톈안먼 사건'(1989년)을 깊게 다루지 않았다. 지은이는 그 이유를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현재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현재 진행중이기에 아직까지는 무어라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톈안먼 사건은 중국 민주주의가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다. 만약 당시 중국 인민이 승리했다면 중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치체제를 구축했을지도 모른다. 소련과 동구공산권이 무너진 것처럼.
100년 전 중국은 반제·반봉건 깃발을 들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해 반제·반봉건은 무너뜨렸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인민이 주인 되는 공화국을 수립하지 못했다. 쑨원-쟝제스-마오쩌둥-덩샤오핑 등 지도자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민을 교화대상으로 삼았고, 민주공화국으로 이행할 능력과 의지가 부족했다. 아니 민주공화국을 바라는 인민들의 바람을 짓밟았다. 그 결과 미국과 경제력에서는 자웅을 겨루는 G2 위치에 섰지만 전체 역량에서는 미국에 한참 모자란다. 가장 큰 이유는 국호만 '중화인민공화국'일뿐 인민이 주인되는 진정한 '인민공화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포기하지 않는한 중국은 경제력은 미국을 넘어설 수 있지만 '국가'라는 전체 역량에서는 미국을 따라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중국은 진정한 인민공화국이 될 것인가?
조관희 교수의 중국현대사 강의 - 신해혁명부터 홍콩 반환까지
조관희 지음,
궁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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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정한 '인민공화국'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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