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조사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그간 수백 명의 피해 유족들을 찾아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 왔다.
조승완
"여순사건, 과거완료형의 역사가 아니네요?"
교과서에도 언급되지 않은 여순사건. 도대체 뭘까? 우리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여순사건'을 찾아보니 아주 단순하게 대답해주고 있었다. 언제? 1948년 10월 19일. 어디서? 전남 여수·순천에서. 누가?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에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무엇을? 반란을. 어떻게? 무장봉기하여. 왜? 제주도 4·3사건 진압출동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려고.
그러나 여순사건은 그렇게 몇 줄로 줄이기에는 너무 아픈 역사였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서희종 상임연구원을 만났다. 도대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부터 물어 보았다. 수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하였다. 여순사건은 10월 19일 발발하여 공식적으로는 10월 27일 진압되었는데, 진압 이후에 본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란다. 주민들을 운동장이나 진남관 등 공터에 불러놓고 한 명 한 명 분류하여 죽이거나 어디론가 끌고 갔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으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 소장님, 서희종 연구원님에게서 여순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여순사건이 과거사에 지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남북대립이 60년이 넘게 계속되는 상황에서, 여순사건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여순사건은 단독정부, 단독선거 반대 운동과 관련이 있어. 단독정부, 단독선거 반대는 통일이라는 말과 통하는 바가 있지. 여순사건을 단순한 이념전쟁이나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차원을 넘어 통일운동으로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아울러 여순사건은 국가폭력이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가, 마땅히 지켜야 할 절차도 무시하고 국민의 생명과 자산을 앗아간 것은 폭력이야. 법치 국가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 무법이지. 국가가 자국 국민을 그렇게 죽인 것은 범죄 행위야."
- 여순사건을 연구하고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우리 연구소 연구원하고 순천 근방에 가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 그런데 인터뷰하다 보니 국군도 나오고, 빨치산도 나오고, 피해자인 민간인도 나오고 그랬지. 그런데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는데 연구원 한 사람이 '어, 우리 편인데!' 하고 말해버린 거야. 그러니까 인터뷰하던 다른 쪽 유족이 순간 입을 닫아버렸어. 증언을 안 하겠다는 거야.
무척 당황했어. 우리가 잘못한 거지. 우리 편이 어디가 있고 너희 편이 어디가 있겠어. 너도 우리고 나도 우리고 다 우린데. 남도 우리고 북도 우리고 다 우린데, 우리 편이라니? 이런 웃지 못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료집을 많이도 생산해냈어. 상당한 데이터도 구축하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