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읍식당에서
김수종
비빔밥을 시키고 물을 한 사발 마시고는 잠시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 앞에 앉아서 소주를 한 병 시킨다. 경황 없이 앞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난 별 부담 없이 동석을 허락했고 같이 소주를 한 잔했다. 이어 들어온 할머니도 동석을 하여 아침부터 소주로 속을 채웠다.
이곳 장터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본격적인 영업을 하기 전에 한 잔 술로 잠시 휴식도 취하고 힘을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치 안주에 소주를 마시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이내 한 할머니가 흑 두부를 한모 사와서 두부와 김치를 안주로 소주를 전부 마셨다.
처음 보는 사람과 동석을 하여 소주를 마시는 것도 대단하지만,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아무튼 나는 군소리 없이 그분들과 소주를 마시곤 아침식사로 비빔밥을 한 그릇 먹었다.
난 식사비와 소주값을 같이 낸 다음 "두부 한 모 같이 먹은 값으로 제가 소주 값은 내지요"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약간 취기가 올랐지만, 아침부터 나와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빈속에 나오셨는지, 두부와 김치로 아침을 때우고 소주로 속을 달래는 모습이 서글프기는 했지만, 우리네 시골 아주머니들의 현실이기도 한 것을... 조금은 알 듯했다.
밥을 많은 먹은 나는 힘을 내어 아침 일찍 갔던 갈전리 방향으로 다시 길을 잡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鍮器匠) 이봉주 명장이 운영하는 '방짜유기촌'으로 갔다. 30분 이상 걸어서 산중턱에 있는 방짜유기촌에 올라갔더니 토·일은 오후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먼 길 왔는데 차라리 문을 열지 말지, 오후에나 문을 연다'고 하니 더 좌절하게 된다.
'이런 다음에 다시 오기도 힘든데, 오후에 다시 와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그냥 안팎을 도둑고양이처럼 살펴보고 가기로 하고 크게 둘러보았다. 실내는 대부분 문이 잠겨있어 볼 수 없었지만, 뒤편 작업장은 청소를 하는 중이라 잠시 가공 준비 중인 금속 덩어리와 실패작들을 눈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