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리쎌 웨폰>

등록 2013.06.23 15:38수정 2013.06.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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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후반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 중에 멜 깁슨이 주연을 했던 <리쎌 웨폰 (Lethal Weapon)>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액션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여서 설날이나 추석 때 TV에서 방영했던 걸 한 번도 아닌 두세 차례 정도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살인 무기' 정도로 번역이 될 이 영화의 내용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다르지 않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그래서 감독과 작가가 규정하는 악당을 물리치는 불사신 같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기에, 오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성명발표에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대한민국 미디어 매체들이 미국이나 중국, 일본의 정세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사정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 깊은 내막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현재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2년간 지속된 내전으로 자그마치 1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내전을 종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차선책으로 11개 나라들의 외무장관들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반군들에게 이른바 'lethal weapon,' 살상무기를 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참고자료 보기)

유엔의 군사적 개입을 촉구했던 일부 아랍 국가들과 단체들은 성명에 지지의사를 표명했는데요. 최근까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여부에 대한 논란은 오늘의 성명을 위한 물밑작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내전의 종결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라크와 리비아의 전례를 통해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정치적, 군사적 개입에 노골적으로 불신을 표명해 왔던 나라도 적지 않으니까요. 반군을 지지하기 위한 보다 명확한 명분이 필요했던 미국에겐 국제적 인도법으로 금지되어있는 화학무기를 시리아 정권이 시민들을 탄압하는데 사용했다는 정황만큼 더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시리아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여부에 대한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화학무기의 사용은 적에게 더 치명적인 손실과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로 다른 차원의 전쟁을 야기시킨다는 사실에 그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국제사회 개입의 충분한 명분을 주는 이유입니다- 참고자료 보기)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반군에게 더 많은 무기, 더 나아가 살상무기를 공급하는 것이 과연 시리아 시민들, 또 시리아의 미래를 위한 길인가를 다시 한 번 숙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리아의 내전사태는 일반 대중매체의 칼럼처럼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쉽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쟈스민 혁명이 시리아까지 도달하긴 했지만,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르게 장기적인 내전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 시리아가 다른 아랍국가들과 현저하게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이는,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을 시 제 2의 이라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시리아 반군이라 지칭되는 단체는 하나가 아닙니다. (참고자료 보기) 크게 자유시리아군 (the Free Syrian Army), 시리아해방전선 (The Syrian Liberation Front), 시리아이슬람전선 (the Syrian Islamic Front) 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에 잠재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문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름 아닌,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가정했을 때 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 권력의 빈자리를 차지하겠냐 하는 것 입니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지극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민주적인 정권이 새롭게 탄생할 거라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하기 그지없는 가설입니다.

부시 전 미국 정권이 이라크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닥뜨리게 된 이유가 바로 이 가설의 신빙성을 믿었기 때문이죠. 그와 같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가설이 세워지고 옹호된 이유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특히 이라크 반군들의 성향과 정치적, 종교적 목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교, 그 이상이라는 것을 무슬림 친구들을 통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뿌리깊은 관습이며, 흔들리지 않는 정신이며,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입니다. 그 내면화된 정체성에 위기가 닥칠 때 그들은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사우디 아라비아는 다수가 이슬람 수니파인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고 있고, 이란은 시아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을 단순히 정치적 동맹이나 경제적 이익관계로 해석하는 것에 한계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피 냄새가 진동하는 패권경쟁이자 종교전쟁은 아사드 정권이 물러난다고 해서 종결될 게임이 아닌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라크 전쟁을 다시 반복하려는 '시리아의 친구들' (Friends of Syria)의 결정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을 무시하는 미국 오바마 정권이 불러 올 시리아의 비극 때문입니다.
#시리아 내전 #시리아의 친구들 #존 케리 성명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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