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 있다

[서평] <11살 유산> (김정문/ 초록호랑이/ 2012)

등록 2013.06.23 15:33수정 2013.06.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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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뜻 아니겠는가."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뜻 아니겠는가." ⓒ 초록호랑이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뜻 아니겠는가." ⓒ 초록호랑이

하도 많이 말해서 말하기가 다 멋쩍은, OECD 34개국 중 32위라는 한국의 행복지수. 이 '불행'의 원인을 전문가들은 경제적 어려움, '사회 안전망의 붕괴'나 '행복에 대한 가치의 차이'로 지목하고 있지만 해결은커녕 갈수록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자살은 10대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라고 하고, 경찰이 '4대 악'으로 선포한 학교 폭력은 여전히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앞으로 웃으며 살아갈 수 있으려나?


"가난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넓고 훌륭한 정원을 가지고 있는 우리 집, 우리 동네. 가장 높지만 가장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동네가 나는 정말 좋았다."(61쪽)

 

열한 살 정훈은 1970년대 중반, 북한산 아래 조그만 산마을에 살고 있다. 주인집의 구석에 얹혀살며 아버지는 막노동, 어머니는 가게 일을 하신다. 학교가 멀어 등굣길은 1시간 반, 친구들과 놀기는 바람을 잡듯 어렵지만 다행히 산속은 놀거리가 많다.


"나무는 말이 됐고, 그네가 됐고, 지친 몸 쉴 수 있는 그늘이 됐다. 상상력이 풍부해 무엇이든 놀잇감으로 만들어버리던 내게 산길 초입에 장만한 나무 작대기가 고려시대 장군님의 칼이 된 것은 필연."(9쪽)


소심하고 겁이 많아 낯선 변소를 쓰지 못해 바지에 변을 지리던 정훈은 동자승 광석을 만나면서 변화를 겪는다. 광석은 정훈을 데리고 산성을 가로막고 있는 동네 무서운 형들과 담판을 짓고 북한산성을 오르고, 그 일을 계기로 정훈은 다른 인생을 꿈꾼다.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뜻 아니겠는가. 그때 느꼈던 만족감과 자신감은 부끄럽게도 태어나 처음으로 만끽해보는 기분이었다."(150쪽)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그 기준에 차이는 있지만 어찌 되었든 그 행복을 향해 뛰어간다. 행복을 위해 돈, 중요하다. 그러나 그 돈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기능해주는 건 결코 아니다. 벤츠를 몰지 말지는 선택이지만 친구, 가족, 사랑, 신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 아니던가.


정훈이 산성에 올라 느끼던 바람, 광석과 함께하던 추억, 공터에서의 야구. 결코 웃고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커다란 행복만이우리에게 삶을 영위할 기쁨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소소하게 숨어 있는 깨알 같은 행복, 그리고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하던가. 지금 친구들과 만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현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미래에 너무 집착하고 있지 않나. 훗날을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함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또 다는 아닐 것이다. 내일의 행복에만 집중해서 지금 불행하다면 지금의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다들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우리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삶을 택하는 까닭은 살아갈 날도 살 만하다고 느낄 때, 행복했던 기억이 앞으로도 그런 날이 있을 거라 말해주기 때문 아닐까. 정훈이와 광석이가 보낸 열한 살의 소소한 삶의 날, 우리가 순간순간 만나는 기쁨이 우리를 살린다. 행복은 거기 있다. 지금 여기!


<11살의 유산>은 따듯하다. 열한 살 마음을 잘 보여주는 적절한 비유와 소설이지만 시 같은 운율로 잘 읽힌다. 곳곳에 숨어 있는 긴장감과 결말의 아득함도 책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열한 살의 우정이 동자승 '광석'에게 유산이 되었듯 나에게도 간직할 만한 '유산'으로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 <라이브러리&리브로>에 실렸습니다.

2013.06.23 15:33ⓒ 2013 OhmyNews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 <라이브러리&리브로>에 실렸습니다.
#11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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