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고지의 참호와 교통호
NARA
1950년 8월 27일은 음력 7월 14일로 초저녁부터 달빛이 밝았다. 하지만 이날 자정을 넘기자 유학산 일대는 갑자기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인민군 야전 지휘부는 며칠 전에 혈투로 점령한 유학산 839고지를 엊그제 빼앗긴 뒤 호시탐탐 재탈환의 반격시간을 노리던 중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갑자기 안개가 짙어지자 이를 인민군 야전 지휘부는 하늘이 내린 호기로 판단했다. 야간전투에 능수능란한 그들은 28일 새벽 2시 30분, 고지탈환을 위한 돌격명령을 전 전사들에게 내렸다.
그날 새벽 전투는 얼마나 치열했던지 전사들은 기본 휴대 실탄도, 수류탄도, 모두 다 떨어졌다. 유학산 839 고지를 지키던 국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유학산 정상 일대는 양측 병사들이 피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뒤엉켰다.
이럴 때는 암구호를 묻고 대검으로 상대를 찌르면 늦었다. 양측 병사들은 뒤엉킨 채 서로 머리를 만져보아 머리털이 손에 잡히면 국군으로, 민둥머리면 인민군으로 식별했다. 그리고는 적군이면 즉각 대검으로 상대 복부나 가슴을 찌르는 백병전이 벌어졌다. 곧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처절한 원시전이 펼쳐졌다.
김준기는 한 국군 신병과 뒤엉켜 육박전을 벌였다. 김준기가 먼저 국군의 가슴을 대검으로 찔렀다. 그러자 또 다른 국군 병사가 대검으로 김준기의 배를 찌른 뒤 벼랑으로 밀었다. 김준기는 '으악!' 비명을 지르며 곧장 절벽에서 떨어졌다.
봉합수술"김 동무, 김 동무…."
희미한 의식 속에 누군가 자기를 불렀다. 분명 최순희 위생병 목소리였다. 준기는 그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천연적으로 위장이 잘된 은폐 엄폐된, 어둑한 동굴 속이었다. 준기가 돌격조로 차출된 뒤 새로 찾아 이동한 천연 야전병동이었다. 가마니를 깐 동굴 바닥에는 붕대를 감은 10여 명의 부상병들이 누워 있었다.
"어드러케(어떻게) 요기를….""오늘 아침 수색조가 절벽 아래 칡덩굴 위에 쓰러져있는 동무를 업고 왔어요. 높다란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이처럼 살아난 것은 기적이에요. 더욱이 대검에 배를 찔리고도. 그 칡덩굴이 김 동무를 살렸어요. 아마도 그 시간에 누군가 정화수 떠놓고 김 동무를 위해 빈 탓일 겁니다.""우리 오마니가 기랬나 봅네다. 내레 새벽에 벼랑으로 밀린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다음은 영 기억이 없구만요.""아무쪼록 살아 돌아가세요.""고맙습네다. 우리 오마니는 날마다 내레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며 기다릴 겝네다.""그러실 테지요.""최 동무! 제발 날 살레주시라요.""내가 무슨 힘이 있나요.""내레 잘 압네다. 최 동무의 상처 꿰매는 봉합술 솜씨를….""글쎄, 두고 봅시다."순희는 준기의 상처와 밖으로 쏟아져 나온 창자를 깨끗이 소독한 뒤 도로 배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런 뒤 수술용 바늘과 실로 준기의 복부를 정성껏 꿰맸다. 마취 없이 복부를 꿰매는 수술이라 준기는 바늘이 살갗에 들어갈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최순희 위생병 전사는 이미 수술 전 수건으로 준기의 입을 틀어막았고, 팔과 다리를 묶었지만 준기는 워낙 고통이 심한 탓에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옆자리 윤성오 상등병이 일어나 준기의 상체를 잡았다.
"김 동무, 참으시오. 그래야 삽네다." 순희는 재빠르게 준기의 찢어진 뱃가죽을한 땀 한 땀 꿰맸다. 준기의 비명이 커지며 몸을 뒤척이려 하자 옆의 또 다른 부상자가 달려들어 하체를 껴안았다. 곧 준기는 생살을 꿰매는 아픔에 지쳐 그만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