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박도
낙동강마침내 그들은 낙동강을 건너고자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준기가 앞서고 순희는 버드나무가지를 움켜잡은 채 조심조심 뒤따랐다.
9월 초순이었지만 밤 강물은 오싹하도록 찼다. 준기는 이를 악물었다. 뭔가 발에 걸렸다. 곧 강물 위로 떠오르는 게 사람의 시체였다. 아마도 강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군인의 시체 같았다. 순희는 '으윽!'하는 가벼운 비명을 질렀지만, 준기는 무심코 터져 나온 비명조차도 혀를 깨물고 참았다. 순간 순희는 공포감에 준기의 등을 껴안았다.
"무서워요.""와, 우리를 해칩네까? 유학산 고디에서 시체를 수태 보고서두."준기는 속마음과는 달리 태연하게 말했다.
"불쌍해요.""하긴 기러쿠만요."그들은 어둠으로 희미하게 떠내려가는 시체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좋은 곳에 가라고 빌었어요.""잘해수다. 나두 마음 속으로 빌어시우.""근데 동생은 어찌 놀라지도 않소?""뭘요. 이만 일에."
준기는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순희의 손을 잡은 채 강을 건넜다. 두 사람은 찬 강물로 몸이 굳자 이따금 서로 껴안고 상대의 체온으로 굳은 몸을 풀었다. 마침내 강 한복판에 이르자 수위가 가슴팍을 넘었다. 준기는 더 이상 순희의 손을 잡고 건널 수 없었다. 준기는 버드나무가지를 허리춤에 묶었다.
"누이, 이제부터는 내 손을 잡디 말구 이 나뭇가지만 잡으라요." "알았어요." 순희는 버드나뭇가지를 꽉 움켜 잡았다. 앞장선 준기는 한 길이나 되는 강심부분을 모재비헤엄으로 건너갔다. 뒤따르는 순희는 나뭇가지를 잡고 꼬르륵꼬르륵 물을 마시며 허우적거리다가 그만 나뭇가지를 놓았다. 그 순간 순희는 허우적거리며 강물에 둥둥 떠내려갔다. 준기는 재빠르게 떠내려가는 순희를 왼손으로 낚아챈 뒤 오른손과 두 발로 안간힘을 다하여 헤엄쳤다.
준기는 기력이 다해 헤엄을 치다가 지친 나머지 모든 걸 포기한 채 발을 내딛자 강바닥에 발이 닿았다. 그 순간 준기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순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레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발을 강바닥에 디딜 건데.""세상사 모르면 다 그런 거예요."그들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
사랑의 힘"저승 문턱에서 살아난 기분이에요."순희는 그때까지도 준기에게 꼭 매달렸다.
"아무튼 힘은 들었디만 누이가 거머리터럼 달라붙으니까 기분은 돟아시오(좋았어요).""어쨌든 살려줘서 고마워요.""일없습네다. 내레 디난(지난) 번 누이가 뱃가죽을 잘 꿰매준 덕분에 살아났디요.""나도 마찬가지이에요. 그때 융단폭격에 살아난 건 동생 덕분이에요.""아닙네다. 하늘이 살레줘시우. 인명은 재턴(재천)이라디요."그들은 마침내 낙동강을 다 건넜다. 그제야 그믐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믐달이 반갑기보다 오히려 무서웠다. 그들은 달빛 때문에 강 숲으로 몸을 숨긴 뒤 준기도, 순희도 젖은 옷을 벗어 짠 뒤 다시 입었다. 젖은 옷이 엄청 차가웠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달빛도 파랬지만 두 사람 입술도 파랬다. 그들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모래톱에서 서로 껴안았다. 그리고는 파란 입술을 포갰다. 곧 온 몸이 데워졌다.
"찬 강물에 굳었던 몸이 금세 펴지네요.""정말 그래요. 이게 사랑의 힘인가요.""길쎄….""고마워요.""뭘요. 같이 사는 길이디요.""나 혼자라면 도저히 엄두낼 수도 없었지요.""내레 마찬가디디요. 자, 순희 누이 이제 그만 갑세다.""네, 그래요. 날이 밝아오는 게 두렵지요."준기가 앞서고 순희가 뒤따랐다.
"밤길은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우니까 일단 철길을 따라 북극성이 있는 쪽으로 가는 게 가장 좋을 거예요.""알가시오. 하지만 털길(철길)은 위험하디요.""그럼, 철길로 가지 말고, 그 철길 밑 길로 가면 덜 위험할 거예요.""알가시오. 순희 누이는 탐(참) 아는 것도 많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