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포로수용소장, 포로들에게 납치되다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47) #13. 거제포로수용소 ②

등록 2013.09.18 20:18수정 2013.09.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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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제포로수용소 포로들이 분뇨와 오물을 수용소 밖 쓰레기장으로 운반하고 있다(1952. 3. 20.).

거제포로수용소 포로들이 분뇨와 오물을 수용소 밖 쓰레기장으로 운반하고 있다(1952. 3. 20.). ⓒ NARA, 눈빛출판사


장남철 상사

김준기는 1951년 2월부터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지냈다. 어느 날 준기가 포로수용소 변소 분뇨 운반통을 어깨에 메고 수용소 밖 저장소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이보라우, 김 동무!"

준기는 귀에 익은 목소리라 깜짝 놀라며 뒤돌아보니 구미 임은동 인민군 야전병원에서 한때 같이 근무했던 장남철 상사였다. 그는 현역 때보다 더 높은 중대장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 있었다.

"김준기 동무 아냐?"
"아, 네. … 다시 만나 반갑습네다."
"어찌 김 동무는 여태 오마니 품으로 돌아가디 못했디?"
"낙동강에서 넹벤까지는 … 수태 멀더구만요."

"기래? 거(그) 간나는?"
"내레 잘 …모릅네다."
"머이, 김 동무가 모르다니?"
"내레 덩말루 …모릅네다."
"최순희, 아마 그 동무는 집에 돌아갔을 게야. 그 간나는 보통이 아니디. 내레 보기에 그 간나는 사막에서두 살아남을 게야. 김 동무가 기동안 거 간나한테 홀딱 홀려 리용당한 게디."
"아,… 아닙네다. 리용당하다니…. 절대루 기러티 않습네다."
"머가 아냐? 내레 보기엔 김 동무가 그 간나 조갑지 맛 한번 보고는 기저 뿅 간 거 같더만."
"……."
"아무튼 간나들이 살살 꼬리치면 사내들은 뿅 가기 마련이디. 기게 사람 사는 세상이디. 네로부터 간나들 꼬리 티는데 놀아나 신세 조진 남정네가 한둘이 아니디. 하긴 기래야 사람사는 역사가 이루어디는 게디."

장 상사는 준기의 얼더듬는 대꾸에 재미있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내레 기때 총구 앞에서두 최 동무의 당당하구 담담한 태도에 거만 기가 질려서(질렀어). 만일 기때 과수원에서 너덜이 살려달라구 비굴하게 매달렸다면 내레 총알이 동무들 심장을 꿰뚫었을 게야." 
"널(늘) 장 동무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네다. 내레 기때 죽은 목숨이디요."
"길쎄. 아무튼 기때 내레 방아쇠를 당겼는데 어드러케 총알이 빗나가더라구. 기건 동무들 복이디. 내레 데(제)76 수용동에 있으니께 꼭 한 번 들리라야."
"예, 기러디요."

준기는 대답은 했지만 그날 이후 한 번도 76 수용동으로 장 상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수용소 포로들에게는 이 동 저 동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도 없을뿐더러,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준기는 장 상사를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준기는 장 상사 앞에만 서면 도무지 오금을 펼 수 없었기 때문이다.


a  유엔군에 차출된 바지저고리를 입은 마을주민들이 지게에다 C 레이션(전투비상식량) 상자를 지고 인솔자를 따라 전투현장인 산으로 운송하고 있다(1951. 2. 4.).

유엔군에 차출된 바지저고리를 입은 마을주민들이 지게에다 C 레이션(전투비상식량) 상자를 지고 인솔자를 따라 전투현장인 산으로 운송하고 있다(1951. 2. 4.). ⓒ NARA, 눈빛출판사


도드 준장

포로들은 포로수용소 내 주도권을 서로 쥐고자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 간 쿠데타에, 역 쿠데타로, 거의 날마다 피의 보복이 이어졌다. 이런 무법천지 속에 포로수용소장 미군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1952년 5월 7일, 도드 준장은 제76구역 포로들이 처우에 불만을 품고 포로수용소장 면담을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도드 준장 보좌관은 포로들의 과격한 행동을 우려한 나머지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도록 포로수용소장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도드 준장은 보좌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약속시간에 제76구역 출입구에서 직접 포로대표들과 면담했다. 그런데 면담 도중 갑자기 포로들이 그를 에워쌓다. 곧 포로들은 순식간에 도드 준장을 납치하여 포로수용소 안으로 끌고 갔다.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이 사태를 긴급 보고받고, 즉각 콜슨 준장을 새 거제포로수용소장으로 임명했다. 친공 포로들은 도드 준장 감금에 성공하자 콜슨 신임 포로수용소장에게 도드 석방의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그 요구조건은 포로수용소 내에서 유엔군 기간병들의 포로에 대한 야만적 행위 중지, 포로 자유송환 중지, 포로 강제분리 심사 금지, 포로대표단 인정 등이었다.

콜슨 소장이 그들에게 포로 자유송환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었다. 그러자 친공 포로들은 도드 준장을 풀어주었다. 도드가 감금된 지 3일만이었다.

도드 준장이 석방되자 유엔군사령부는 그의 실책을 추궁했다. 그와 함께 사태 수습을 맡았던 콜슨 준장도 너무 큰 양보를 하였기에 포로수용소장으로 신중치 못한 처사라 하여 그 책임을 물었다.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즉각 콜슨 포로수용소장도 해임하고, 그의 후임에 보트너 준장을 새 거제포로수용소장으로 임명했다. 그런 뒤 도드 납치진상조사단의 보고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곧 도드와 콜슨 두 준장을 대령으로 강등하는 불명예 조치를 내렸다.

a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친공 포로들이 정치구호나 그들의 요구조건을 적은 플래카드들 수용소 내에 내걸어두고 있다(1952. 3. 20.).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친공 포로들이 정치구호나 그들의 요구조건을 적은 플래카드들 수용소 내에 내걸어두고 있다(1952. 3. 20.). ⓒ NARA, 눈빛출판사


보트너 준장

도드 준장 석방요구 조건으로 의외의 수확을 얻은 포로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들은 수용소 내에 인공기를 게양하고, 김일성과 마오쩌둥 사진을 내거는가 하면, 포로수용소 곳곳에 미군을 모욕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신임 보트너 준장은 이에 분개하여 공수특전단을 포로수용소에 투입하는 강경책을 폈다. 공수특전단은 탱크를 앞세우고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 포로들이 게양한 인공기를 모두 내렸다. 그런 뒤 친공 포로를 500명 단위로 강제로 분산수용하여 그들의 조직을 무력화시켰다. 또한 그들이 거부한 포로송환 심사도 받게 했다. 보트너 신임 포로수용소장의 강경책 이후 포로수용소 내에서 인공기나 중국기가 게양되는 일은 차츰 사라졌다.

준기는 거제포로수용소 내에서 이런저런 일련의 사태들을 그저 남의 일처럼 지켜보며 입을 꾹 다문 채 세월을 보냈다. 그는 3년 가까운 포로수용소 생활을 죽 그렇게 보냈다.

"둔기야, 네레 무사히 돌아올래믄(돌아오려면) 아무튼 전쟁터에서 입이 바우터럼(바위처럼) 무거워야 돼. 약속 하갓네?"

준기는 고향집을 떠나올 때 오마니가 한 그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a  철조망이 2중, 3중인 거제포로수용소(1953. 4. 13.).

철조망이 2중, 3중인 거제포로수용소(1953. 4. 13.). ⓒ NARA, 눈빛출판사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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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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