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 안에서 남자현 지사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리고 있는 답사자들
정만진
조지훈 생가, 남이포, 봉감 국보탑, 서석지, 두들마을 등 영양의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내려오던 역사문화유산 답사자들이 남자현 지사 생가터를 방문하지 않을 리 없다. 뿐만 아니라, 남자현 지사의 사당에서 중문으로 들어가겠노라 고집을 피울 이도 없다. 이런 제향 시설에서는 으레 중문 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이야 모두들 아는 일이다.
사실은 모두들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하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전국 방방골골을 다녀본 역사여행 답사자라면 한결같이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답사자의 배향을 위해 문을 개방해둔 곳은 정말 드물다. 당연히, 남자현 지사의 생가 사당은 문이 열려 있는데 무슨 불만이 있을까.
모두들 들어가 참배를 한다. 문이 닫혀 있을 거라 지레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빈손'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들른 영농조합에서 자체 생산한 향토 막걸리를 구입했었는데, 그야말로 배향을 하는 데는 딱 안성맞춤이다. 빛깔 좋고, 향기 좋고, 그래서 모두 좋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엔 술을 치우기로 했다. 잔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잔도 없이 지사께 술을 올린다는 것은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뜨겁게 세상을 버린 분께 어찌 술잔 하나 갖추지 못한 채 참배를 한단 말인가. 배향은 술병을 얹은 채로 했지만, 사진만은 말끔한 모습이 나오도록 신경을 쓰기로 했다. 이를 두고 누군가가 '지식인의 허위의식'이라 비방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8월 22일, 남자현 지사 타계 80년이 되는 날을 코앞에 두고, 그의 생가와 사당을 찾아 참배하는 이 마음,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 해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하늘나라에 계시는 그 분께서 알리라' 자위하면서, 우리는 담담하게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서로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중앙정부에도 보훈처에도, 경상북도에도 영양군에도 묻지 않았다. 아니, 묻지 못했다. 8월 22일, 남자현 지사를 기려 어디에서 누가 무슨 추념을 하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를 기리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우리는 그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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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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