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농활갔다가 '첫사랑' 됐습니다

[공모-폭염이야기] 대학 새내기 시절 무더웠던 첫 농활

등록 2013.08.29 21:32수정 2013.08.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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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TV에는 항상 대학 캠퍼스의 낭만에 대한 드라마가 가득했다. 그래서 인지 대학만 가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았다. 모두들 마음속에는 첫사랑이나 연예를 하고 싶은 소망을 가득 품은 채 대학만 가면 행복한 날이 가득한 줄 알았다. 물론 현실은 예상과 달랐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대학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먼저 나서서 노력해서 친해지고 다가서지 않으면 철저히 외톨이가 되는 그런 구조였다. 고등학교 때처럼 그저 같은 반이라고 해서 어울리고 친해지고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휴학하고 자퇴하는 주변의 동기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좀 먹먹했다.

이상한 친구들 '캠브리지'

a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캠브리지 친구들은 철없이 어울렸다.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캠브리지 친구들은 철없이 어울렸다. ⓒ 명필름


그러한 분위기의 돌파구였을까? 나는 새내기 대학시절 동아리에 많이 가입을 하려고 했다. 친목도 도모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기도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학 입학 첫해를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중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항상 뭉쳐 다니는 '캠브리지'라는 친구들 중에서 친한 녀석이었다.

여기서 잠깐, 도대체 캠브리지는 무엇일까. 캠브리지는 '아웃사이더' 스타일의 친구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이었다. 대학시절, 여성 동기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거나, 인상이 험하거나, 인기 없는 동기들끼리 모여 자존심은 지키자는 의미로 작게 결성됐다. 하지만, 나중에는 점점 세가 커져 인원수가 불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구호도 촌스럽다 못해 유치했다. "사나이! 의리! 넘어지는 한이 있어도 무릎은 꿇지 않는다!" 그 촌스러운 구호를 창피한지도 모르고 대학가의 술자리에서 늘 외쳤다.   


친구의 전화, 뭔가 불안했다

내게 전화를 건 캠브리지 친구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친구냐? 아니냐?"고 물었다. 순간 나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느꼈다. 그런 식으로 평소에 친구들끼리 짓궂은 장난을 즐겨했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의리! 친구! 당연하지!"를 외치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입학하고 얼마 전 그 친구와 몇몇 친구가 같이 가입한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 동아리는 보육원·노인정 등을 방문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물론 나는 봉사보다는 친구들 따라 강남 가듯 가입한 케이스였다.

전화한 그 친구는 동아리에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다고 했다. 근데 그 동아리가 이번에 여름방학을 맞아서 경상도로 농활을 간다는 것. 그래서 같이 가서 자기가 그 여학생과 친해지도록 많이 노력해 달라고 했다. 친구는 "그 여학생은 내 첫사랑"이라며 내게 "날 도와주는 조연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가기로 약속을 했지만,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그해 여름이 너무 무더웠기도 했고, 농사일은 해본 적도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등치 좋고 믿음직한 친구 하나가 떠올랐다. 나도 전화를 걸어 "친구냐? 아니냐? 남자라면 의리"라고 우기며 그 친구 녀석을 꼬셔 함께 농활을 가기로 했다.

어느덧 농활의 시작. 내게 조연을 부탁한 친구는 먼저 경상도 상주 외곽 시골마을로 농활을 먼저 떠났다. 나와 내가 꼬인 친구는 후발대라 이틀 뒤에 도착했다. 시골마을에서는 우리 둘을 경계하는 듯했다. 동네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어리바리하게 목적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듯했다.

목 뒤로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물어물어 간신히 농활을 하는 마을에 도착했다. 동아리 동기들과 선배들은 모두 녹초가 되기 직전이었다. 다들 땀범벅에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리를 오게 만든 그 친구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반갑게 우리를 맞이할 것이라 예상됐든 그 친구가 보이지 않다니. 동아리 동기들의 말로는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다시 돌아갔다고 했다. 당시 그 마을은 전화기가 흔치 않아 친구에게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농활에 돌입했다.

무더운 여름, 친구에게 '낚였다'

a  농활과 첫사랑을 배경으로한 영화 <그해여름>

농활과 첫사랑을 배경으로한 영화 <그해여름> ⓒ KM컬쳐


우리는 논 농사일에 투입됐다. 여름 방학 중에 농활을 간 것이라 땡볕에서 논에 있는 잡초라고 불리 우는 피를 뽑는 일이었는데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고 논의 질퍽한 곳들을 누벼야 했다. 여학생들은 밭에서 밭일을 도와주며 밤에는 동네 아이들과 같이 놀기도 하고 공부도 알려주는 일을 맡았다.

평생 그렇게 하루 종일 많은 술을 마신 적은 없었다. 일하는 내내 새참이라고 하시면서 수시로 간식거리를 가져다 주셨는데 항상 막걸리와 소주가 함께 왔다. 처음엔 기분 좋게 마시며 일을 하였으나 나중에는 수시로 새참을 주시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 술이 없으면 체력이 딸려서 일을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술을 주시면 우리는 취하도록 마셨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은 다 깼다. 평생 그렇게 하루 종일 많은 술을 마신 적은 그 농활 이후로는 없는 듯하다. 가만히 있어도 줄줄 땀을 흐르게 하는 더위와 논에서의 잡초를 뽑는 농사일이 장난이 아니어서였다. 20대 초의 한창 나이인데도 매일 저녁에 동아리 선배와 동기들끼리 모여서 피드백 시간을 가지면 서로 힘들고 지친 얘기가 빠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후발대로 간 나와 다른 친구는 이를 갈았다. 먼저 간 의리를 지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캠브리지 친구가 우리에게 말도 안 해주고 도망간 것을 보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 정도로 힘들면 우리에게 뀌뜸이나 해주고 갈 일이지 오라고 부탁해놓고 본인은 사라지다니. 설마 설마 했지만 농활을 해가면서 우리 둘은 첫사랑을 위해 도와달라고 했던 친구가 도망을 갔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 친구의 도망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친구가 좋아한다던 여학생이 이미 동아리에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 그런데다가 농활도 너무 힘이 드니 도망을 갔다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됐다. 그렇게 그 녀석은 우리를 못본 척하고 탈출했던 것이었다.

'아, 제대로 낚인다는 게 이런 것이란 말인가?' 머리 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머리는 피곤한데다가 한없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일을 도와 드리는 동안은 어영부영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농활을 하면서 이상했던 점은 농사일을 거의 여자분들과 자제분들이 하는 모습을 본 것. 그 동네만 그랬던 것인지는 몰라도 남자 분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거의 집안의 생계를 여자분들 이 짊어진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낮에 일을 도와 드리는 동안은 어영부영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돌아가면 그 무더위에 그분들이 힘들게 직접 다 하실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동아리 선배와 동기들은 저녁이 되면 피곤함과 허리통증에 시달렸고, 땡볕에 살이 타서 목과 팔다리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밤마다 시골의 체력 짱짱한 모기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동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시골 아침의 매미와 귀뚜라미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공포의 멜로디로 들릴 지경이었다. 막일이나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다 해봤지만, 이렇게 힘든 일은 없었다. 나는 며칠간의 농사일로 두 발의 엄지발톱이 다 빠졌다.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 됐다

a  농활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해여름>

농활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해여름> ⓒ KM컬쳐


그래도 시골의 저녁은 한가롭고 여유로워보였다. 시간이 허락돼 자전거라도 타고 마을 어귀에 바람이라도 쐬러 갈 때면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평안함이 느껴졌다. 풀냄새가 묻어오는 바람과 그 시골의 하늘은 유치한 스무살의 마음처럼 어쩜 구름한 점 없이 푸르기만 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농활의 마지막 날. 동아리의 여학생 하나가 살짝 내게 고백을 했다. 가볍게. 내가 자신의 첫사랑인거 같다고. TV나 영화에서처럼 머리가 빙빙 돌고 하늘이 노래지진 않았다. 물론 받아들이는 나도 서툴었지만, 그 친구도 내게 서툴게 고백했다. 그냥 그렇게 가볍게 그 시간은 지나갔다. 서로 부담 없이.

a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 중 한 장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 중 한 장면. ⓒ 명필름


나를 농활에 오게한 그 친구는 자신의 첫사랑을 그토록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첫사랑이 됐다. 나를 낚아서 골탕 먹인 친구 덕분에 그해 그렇게 무더운 여름에 나도 누군가의 첫사랑이 됐던 것이다.

그해 무더운 여름의 농활 때문에 아직도 발톱 모양이 예쁘지 않다. 하지만 발톱을 볼 때마다 땀을 줄줄 흘리며 농활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시골어귀의 풀냄새가 묻어오는 바람과 푸르른 하늘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영화 <건축학개론> 카피가 생각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폭염이야기' 응모글입니다.
#그해여름 #건축학개론 #첫사랑 #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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