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시들시들 아픈 나, 왜 이럴까

[공모-폭염이야기] 토닥토닥 달래며 보내는 여름

등록 2013.08.26 17:22수정 2013.08.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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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봅시다."
"저. 피부가 다시 가려워서요. 이번에는 아프기도 하고요."


낯익은 의사선생님 앞에 앉자 나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웃옷을 들어 보였다.

"흐음, 이건 대상포진인데? 많이 아팠겠는데 어떻게 참았어요?"
"대상포진이요?"
"그래요. 이렇게 한 줄로 늘어선 것이. 그리고 좁쌀 같은 게. 오늘은 주사 맞고 약 드시고, 이틀 후에 다시 봅시다."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느새 처방전을 기록하고 있었다.

"대상포진이 뭐예요? 이번에는 다 나으려면 얼마나 걸려요?"
"음, 한 보름쯤은 걸릴 것 같은데. 그리고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약해지면 걸리는데 수두처럼 평생 한 번 걸리는 거라오.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찾아봐요.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요?"

"...그냥 참을 만 했어요. 그보다는 날이 더워서 정신이 없다보니 아픈 것도 잘 몰랐어요."
"허허, 더위라. 하긴 이번 여름이 덥긴 덥죠. 아무튼 건강관리 잘 하세요."


진료실을 나와 주사를 맞고, 처방전을 받고, 약국으로 내려가 약을 받아 건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한낮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나에게 덤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햇빛이 쨍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고, 양산을 쓰고 걸어도 아스팔트의 지열이 발목을 붙잡는다. 어쩌다 부는 바람도 후끈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게 하고... 정말이지 숨 막히는 여름이다.

몇 해 전부터 난 여름이 젊음의 계절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원래 나는 추운 겨울보다는 더운 여름이 좋았다. 몸으로 스며드는 한기 때문에 몸이 자꾸 움츠러 드는 것보다는 땀을 흘리고 나면 개운해지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여름은 가장 힘든 계절로 바뀌었다.

우리 집은 도로 바로 앞에 있어서 아침이면 도로를 오가는 차들의 열기가 그대로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오후가 되면 부엌 베란다 창문으로 한낮의 열기가 밀려든다. 밤이면 아파트 외벽의 열기가 안으로 밀려들어 찜질방처럼 후끈해진다. 여름만 오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현관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것도 식구들이 있을 때나 가능하고 나 혼자 있을 때는 닫아야 하니 여름을 보내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리고는 달래본다. 더위야, 올해는 기승부리지 말아라.

매일 아침이면 창문으로 밀려드는 바람, 마치 에어컨 실외기에서 솟는 바람처럼 후끈한 열기를 품은 바람에 땀이 삐질 나기 시작한다. 한낮의 정적 같이 집안에 자리 잡은 더위는 아무리 선풍기를 틀어도 그 자리를 맴돌 뿐. 그러다가 해가 넘어가고 밤이 오면 한낮에 받은 더위를 식히느라 내뿜는 아파트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숨이 막힐 지경이다. 게다가 집안일을 하는 주부이다 보니 혼자 있을 때는 현관문도 열지 못해 고스란히 열기를 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입맛을 잃어 식사는 하루에 한 끼만으로, 나머지는 우유를 마시거나 빵으로 대신해서 기운이 나질 않는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는 갑자기 배꼽 밑 부분이 가렵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냥 두었더니 점차 번졌다. 이후 간지러움이 더해져 동네 병원을 찾아가 바르는 약에 먹는 약으로 치료를 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 이웃을 통해 용하다는 피부과를 알아낸 뒤 지금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건 납 때문에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쇠로 된 단추가 붙어있는 바지는 입지 말아요. 주사 맞고 약 드세요."
"갑자기 왜 그러는 거죠? 지금까지 피부 때문에 고생한 일이 한 번도 없었데요. 언제쯤 다 나을까요?"
"그건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래요. 낫는 것은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좀 오래 갈 것 같군요."

전문의라는 직함에 맞게 지긋해 보이는 얼굴과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 인자함이나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간결하면서도 무뚝뚝한 어투는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는 버스로 40여분 정도 걸리고 버스도 자주 오지 않아 왕복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데도 계속 찾는 것은 확실한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주사를 맞고 온 날은 목소리가 갈리질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그렇게 그 해 여름은 꼬박 병원을 다녀야 했다. 그 후로는 병원 가는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작년 여름에는 급성장염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방학 중이라 아이들에게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해주고 나서 갑자기 저녁 무렵부터 한기가 들어 자리에 누워 앓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끙끙 소리를 내고 이를 딱딱 부딪히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해야 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한 상태에 탈수까지 겹쳐 링거를 맞으며 몸을 추슬렀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국수를 요리할 때 부엌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온 후끈한 바람의 열기가 느껴져 병실 창문을 보는 것도 싫었다.

"뭐라고 합디까?"
"후, 대상포진이래요."
"대상포진? 참 여러 가지 한다. 어떻게 해마다 여름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어."
"……"

남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화가 났다. 여름 때문에 힘든 사람은 바로 나인데...

"자, 이거 부지런히 먹어봐요. 면역력을 키워준다니까."

남편은 무심한 손길로 영양제를 건네주었다. 이것도 난생 처음이다. 무뚝뚝한 남편이 나를 위해 영양제를 사 준 것도. 무더운 여름, 숨 막히는 열기의 느낌에 하나 더 보탠다. 남편의 무뚝뚝한 사랑을.

이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것을 보니 여름도 끝나가는 것 같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올 여름은 장마가 길어 작년 여름보다는 좀 수월하게 보냈지만 내년에는... 그때도 달래봐야겠다. 별 탈 없이 보낼 수 있도록. 토닥토닥...
덧붙이는 글 폭염이야기 응모
#폭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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