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家)는 황토지형에 만든 동굴집의 입구 같은 집 면(?) 아래에 돼지 시(豕)가 결합된 형태이다.
漢典
중국인들 중에는 종교가 없는 이가 많다. 굳이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삶도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라고 말한 공자의 '유교적 현실주의'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인들에게는 유교의 가르침이 종교의 가치를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인들은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제례를 종교적 의식으로 생각하며, 효 실천을 마치 종교적 규범처럼 여기며, 이 모든 의식과 규범이 행해지는 법당이자 교회이자 성당이 바로 '집'이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부터 남아 있는 집 '가(家, jiā)'의 모습은 그리 성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황토 지형에 만든 동굴집의 입구 같은 집 면(宀) 아래에 돼지 시(豕)가 있다. 똥돼지를 키우듯 아래에 돼지가 살고, 위에 사람이 함께 사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이런 집 구조의 유적이 발굴된 적도 있다고 하니 왠지 집이 좀 궁상맞게 여겨진다.
<한자 문화, 어디로 가는가?>의 저자 리 소테츠는 아래에 있는 '豕'를 죽인 개로 보고, 집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건물인 사당(祠堂)으로 보고 있다. 과거 귀족들은 죽으면 '묘(廟)'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는데, 일반 백성들은 가(家)를 지어 대신했다는 것이다. 즉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신성한 건물을 짓기 위해 개와 같은 가축의 희생물을 땅에 묻어 흙에 진혼제를 행하는 곳이 곧 집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사실 중국 문화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개념에서 보듯, 집을 중심으로 수렴되고 확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의 의미를 최대로 확장하면 곧 천하가 되니, 온 세계가 모두 한 가정인 '사해일가(四海一家)'가 되고, 천하를 집으로 여기는 '가천하(家天下)'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뮬란>에서 작은 용 캐릭터를 조상신으로 설정하여 스토리를 전개해가는 것은 매우 탁월해 보인다. "들어오면 효도하고 나가면 공손하라(入則孝, 出則弟)"는 <논어>의 가르침 또한 나고 드는 기준점이 되는 것은 집이고, '효'를 유교적 '도'를 지탱하는 근본 가치로 삼고 있다. 중국인의 의식 속에서 집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가족을 생산 수단과 이익의 기본 단위로 하며 집과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다 보니 공(公)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아무리 청렴한 관리라도 자신의 집안일을 과감히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淸官難斷家務事)"는 속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무리 행복한 가정이라고 해도 집집마다 한두 가지 어려운 일은 있기 마련일텐데(家家有本難念的經), 집과 가족의 가치에 매몰되다보면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기란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일찍이 가족 단위로 파편화될 위험 요소를 간파해서인지 '사회주의 대가정(社會主義大家庭)', '조국 대가정(祖国大家庭)' 등의 개념을 통해 사회적 구심력과 연대 의식을 높이기 위해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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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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