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남을 '모시라'.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윗니 두 개가 부러져 입술과 턱을 열 바늘 넘게 꿰맨 꽃차남. 큰애가 육탄전을 접고 동생을 '모시고' 놀고 있다.
배지영
그날 아침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편은 자고 있었다. 큰애는 소파에 기대어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었다. 평일에는 텔레비전을 켤 수 없다는 걸 아는 '꽃차남(둘째 아들)'도 일찌감치 일어나 만화를 틀어달라고 졸랐다. 나는 사과를 깎아서 아이들한테 대령해 주고는 전날 읽다만 책을 읽었다.
꽃차남은 1시간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만화영화를 보았다. '아, 이쯤에서 태클이 들어가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가면서 큰애에게 "지금 보는 만화 끝나면 꽃차남도 텔레비전 끄게 하고 너도 스마트폰 그만 해"라고 말했다. 얼마 있다가 꽃차남의 울분에 찬 통곡소리가 샤워 물줄기를 뚫고 들려왔다.
남편이 텔레비전을 들고 나가버렸다집안의 평화를 짓이기는 꽃차남의 울음소리에 남편이 깼다. 기분이 상쾌할 리 없지만 그는 부엌으로 가서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쌀을 씻어 안치고, 카레를 하고, 생선을 구웠다. 밥상이 다 차려졌는데도, 꽃차남의 징징대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동생 때문에 짜증이 난 큰애는 꽃차남을 사정없이 쥐어 패고 있었다.
나는 "왜 동생한테 아량을 못 베풀어? 때리면 달라져?"라고 하면서 큰애 등짝을 때렸다. 에고, 난장판이 된 거다. 그래도 남편은 침착하고 단정하게 수저까지 놓았다. 우리 셋은 식탁에 앉아서도 각자의 감정에만 충실했다. 아이 둘은 식탁 밑으로 다리를 뻗어 싸우고, 나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꽃차남 편에 섰다. 남편이 말했다.
"밥 먹지 말고, 각자 방으로 가!" 우리 셋은 순순히 숟가락을 놓고서 일어섰다. 나는 내 공부방으로, 큰애도 자기 방으로. 그런데 꽃차남이 울면서 말했다.
"나는, 내 방이 없잖아요.""그럼, 안방으로 가."
식구 넷이 떨어져 있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하는 순간,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꽃차남은 밥그릇을 들고서 방으로 간 모양. 혼자 수저질해서 밥 먹는 소리가 아름다웠다. 기분이 풀렸다. 남편도 그런지 '모두 나와서 밥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씨익 웃으면서 식탁에 둘러앉았다. 남편은 생선살을 발라서 처자식의 카레 밥 위에 올려주었다.
남편은 늘 그렇듯이, 성당 미사에 갔다 와서 집안 청소를 했다. 아이들과 나는 아침에 한 '짓'이 켕겨서 몹시 사랑스럽게 행동했다. 청소하기 쉽게 물건들을 모두 제자리에 놓았다. 우리 셋이서 "덕분에 청소 빨리 끝나서 좋지?"라고 말하면 남편이 웃겠지. 그런데 청소를 끝낸 남편은 커다란 텔레비전을 들고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