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어 '좋다'? 그게 아닌데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36] 好(좋을 호)

등록 2013.10.08 14:24수정 2013.10.0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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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好 좋을 호(好)는 여자(女)가 아이(子)를 안고 있어 ‘좋다’는 의미다.

좋을 호(好)는 여자(女)가 아이(子)를 안고 있어 ‘좋다’는 의미다. ⓒ 漢典


중국 옛날에 엽공(葉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용을 아주 좋아했다. 그는 집안의 대문, 책상, 이불 어디든 용을 새겨 놓고 즐겼다. 이 소식을 들은 하늘의 진짜 용이 감동하여 어느 날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엽공은 진짜 용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져 도망가고 말았다. 바로 '엽공호룡(葉公好龍, Yègōnghàolóng)' 고사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도 피상적인 단계에 머물지 않고 그 진정한 내면의 깊이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호들갑을 떨며 뭔가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엽공처럼 그 겉모습만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중국에서는 학업 성적, 사상, 신체 활동 능력, 이 세 가지가 뛰어난 학생을 '3호 학생(三好學生)'이라고 학생들의 투표로 선발하여 학기마다 시상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성적순으로 선정되어 최근에는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좋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판단 영역에 해당된다. 고대인들은 과연 무엇을 좋은 것으로 여겼던 것일까? 과거 수렵, 농경사회에서는 사냥이나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성원을 확보하고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것'으로 인식됐다. 중국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한 마오쩌둥(毛澤東)이 했던 말처럼 '사람이 곧 힘(人就是力量)'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좋을 호(好, hǎo)는 여자(女)가 아이(子)를 안고 있어 '좋다'는 의미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어 '좋다'는 해석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子'는 성인 남자가 아니라 어린 아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이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다.

갑골문에 보이는 여자 '女'에 대해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쪼그려 앉아 아이를 낳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아이를 안고 좋아하는 여인의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출산'은 그 무엇보다도 좋은 일로 여겨졌다.

중국인들이 대문에 붙이는 대련(對聯) 중에 '호독서불호독서, 호독서불호독서(好讀書不好讀書,好讀書不好讀書)'라는 문구가 있다. 언뜻 보면 같은 말을 두 번 적은 것으로 보이지만, '好'가 '좋은(hǎo)'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도 되고, '좋아하다(hào)'라는 의미의 동사로 쓰일 수 있음에 착안한 절묘함이 느껴진다. 그 뜻은 "책을 읽기 좋을 때(어리고 젊을 때)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고, (철이 들어)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니, (눈이 좋지 않거나 기억력이 감퇴되어) 책 읽기에 좋지 않은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왕성한 에너지와 맑은 기억력이 있을 때 책 읽기를 좋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논어(論語)>에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좋아하는 이는 즐기는 이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자발적인 동기로 무장하여 무언가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무엇보다 큰 에너지를 자져다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아이를 안고 좋아하는 엄마처럼, 앞에 놓인 일을 즐겁게 대한다면 팍팍한 일상도 조금은 부드럽게 바뀌지 않을까.
#好 #좋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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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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