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산길, 한번 걸어 볼까요

봄에는 철쭉으로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한 장흥 제암산

등록 2013.10.18 09:52수정 2013.10.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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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억새가 핀 산길. 제암산 오르는 길

억새가 핀 산길. 제암산 오르는 길 ⓒ 전용호


가을은 하늘이 맑다. 산 정상부 초원에는 억새가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은 하늘과 억새가 어울린 풍경을 보려고 산에 오른다. 산정을 가로지르는 산길. 길옆으로 하늘거리는 억새. 군데군데 피어있는 들국화. 까슬까슬한 가을바람.

억새를 즐기려면 대규모 군락을 이룬 장흥 천관산이 유명하지만, 민둥산을 타고 가는 호젓한 산길을 걸으려면 제암산에 가보기를 권한다. 제암산은 해발 809m로 산행하기에도 적당하다. 산정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바위모양이 임금 '제(帝)'자 모양이라서 제암산(帝岩山)이라 했단다. 그래서 정상에 있는 바위를 임금바위라 부른다.


제암산은 장흥읍에서 오르는 길도 있지만 차를 가져가거나 원점회귀를 하려면 보성 웅치에 있는 제암산자연휴양림에서 오르는 길도 있다. 제암산을 제대로 즐기려면 곰재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좋다. 곰재에서 정상까지는 산길이 완만하여 하늘과 맞닿은 능선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휴양림에서 곰재로 올라 정상을 거쳐 돌아오는 길은 5.5㎞로 반나절 정도 걸린다. 참고로 휴양림에서는 주차비(3000원)와 입장료(1000원)를 받는다.

형제가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바위

휴양림에서 곰재로 오르는 길은 상수리나무가 가득하다. 가을인데도 잎이 아직 푸르다. 여름 숲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한 느낌을 준다. 곰재로 오르는 길은 아주 완만하다. 예전에는 장흥으로 넘나들던 길이다. 휴양림이 있는 곳은 곰재에서 이름을 딴 보성 웅치(雄峙)면이다.

a  제암산. 곰재로 오르는 길

제암산. 곰재로 오르는 길 ⓒ 전용호


a  제암산 오르는 길. 길옆으로 구절초가 피었다.

제암산 오르는 길. 길옆으로 구절초가 피었다. ⓒ 전용호


능선에 올라서면 곰재삼거리다. 곰재삼거리는 생각만큼 넓지 않다. 이정표만 요란하게 서있을 뿐이다. 재를 넘으면 장흥이 나오고, 왼쪽 능선을 타고가면 철쭉제단이 있는 철쭉군락지다. 봄철 이곳에 오면 커다란 철쭉꽃이 한가득 피어서 온산을 붉게 물들인다.


곰재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1.6㎞다. 조금 가파르게 올라가더니 커다란 바위를 만난다. 바위 뒤로 장흥 읍내가 있는 들판이 펼쳐진다. 들판 사이로는 탐진강이 여유 있게 흘러간다. 커다란 바위는 특이한 모양인데, 두 바위가 부둥켜 안은 것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형제바위라고 했는가 보다.

형제바위에는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늙고 병든 어머니가 드실 약초를 캐기 위해 이곳에 왔다. 동생은 낭떠러지에 있는 약초를 보고 내려 가다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나무를 붙잡고 있었다. 이를 본 형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손을 잡았는데 굶주리고 지친 나머지 그만 둘 다 떨어져 죽었다.


a  제암산 형제바위. 뒤로 장흥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제암산 형제바위. 뒤로 장흥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 전용호


그후 며칠이 지나서 형제가 떨어져 죽은 곳에 다정하게 서있는 바위가 솟아올랐고, 사람들은 이를 형제바위라 불렀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이 산에서 산나물과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온다. 슬픈 이야긴데 바위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바위 모양이 너무나 다정스럽다.

단장하지 않아도 예쁜 꽃

산길은 숲을 벗어나고 초원이 펼쳐진다. 등산로 옆으로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군데군데 보라색 용담이 별처럼 반짝거리며 눈길을 끈다. 노란 미역취도 재잘거리듯 피었다. 억새는 바람에 시달렸는지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산길은 정상으로 이어진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기분이 좋다. 가을 산행의 매력이다. 억새만큼 가을과 어울리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보는 사람에 따라 우울하게도 보이지만 화려하게도 보인다.

a  하늘과 맞닿은 길. 이런 길을 걸을 때면 하늘로 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하늘과 맞닿은 길. 이런 길을 걸을 때면 하늘로 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 전용호


a  제암산 능선길. 정상에는 임금바위가 있다.

제암산 능선길. 정상에는 임금바위가 있다. ⓒ 전용호


뒤를 돌아보니 억새 사이로 울퉁불퉁한 월출산도 보인다. 맑은 하늘과 맞닿은 산길을 걸어간다. 산, 하늘 그리고 사이에는 가을이 있다. 눈이 즐겁다. 억새는 단장하지 않아도 예쁘다. 적당한 키는 친근감을 준다. 억새 사이로 들어가서 같이 사진을 찍고 즐거워한다.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서 있다. 점점 다가갈수록 웅장하다. 커다란 바위가 통으로 서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래서 임금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보다. 낮은 바위는 등산로가 있어 쉽게 올라가는데, 큰 바위는 올라가기가 힘들게 보인다. 바위 아래에는 '암벽등반금지'라는 커다란 경고문구도 붙여 놓았다.

a  제암산 정상. 암벽등반금지라는 경고문이 있다.

제암산 정상. 암벽등반금지라는 경고문이 있다. ⓒ 전용호


a  제암산 정상 임금바위. 하나의 커다란 바위다.

제암산 정상 임금바위. 하나의 커다란 바위다. ⓒ 전용호


작은 바위에서 한참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큰 바위를 오르는 등산객이 보인다. 가만히 지켜보니 오르는 길이 있다. 오르는 길 끝에는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틈이 보인다. 건너편을 향해 "올라갈 수 있어요?"라고 물으니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아요"라며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올라 다녔단다.

밑에는 경고 문구를 써 놓고 정상 표지석은 임금바위 정상에다 세워 놓았다. 정상을 밟기 좋아하는 등산객들에게 어쩌라고. 제암산 정상에 오르려면 어쩔 수 없이 올라야 한다. 경고 문구 보다는 아예 오를 수 있는 시설을 해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심스럽게 바위에 발을 디디면서 올라선다. 조금은 위험하지만 발만 잘 디디면 계단 오르듯 쉽게 올라갈 수 있다. 마지막 관문은 바위틈이다. 몸을 바로 해서는 통과할 수 없다. 몸을 90도 정도 비틀어서 바위틈에 머리와 몸을 밀어 넣은 후에 나사 돌리듯 틀어서 올라가야 한다.

a  제암산 정상 표지석은 임금바위에 서 있다.

제암산 정상 표지석은 임금바위에 서 있다. ⓒ 전용호


a  제암산 정상. 임금바위에 앉아 주변을 내려보면 제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제암산 정상. 임금바위에 앉아 주변을 내려보면 제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 전용호


그렇게 올라선 제암산 정상은 정말 장관이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올라가지 말라는 곳에 올라가서 더욱 감동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임금바위라는 이름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주변을 다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의 웅장함을 느낀다. 임금바위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가을이 익어가는 노란 들판이 풍요롭다.
#제암산 #억새 #임금바위 #곰재 #가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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