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윤정씨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지난해 5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 삼성일반노조, 시민들이 삼성 본관에 국화꽃을 던진 후의 모습.
유성호
10월 28일은 반도체노동자의 날이다. 이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반올림은 이 자리에서 공단측에 지난 18일 법원이 내린 고 김경미씨 관련 1심 판결을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말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이 자리엔 오랫동안 반올림 투쟁에 함께해 온,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함께한다. 황씨가 이날 함께 하는 이유는 자신이 겪고 있는 6년에 이르는 그 험난한 여정을, 고 김경미씨의 가족들은 밟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삼성반도체 뇌종양 피해자 혜경씨도 어머니와 함께한다. 혜경씨에 대한 1심 판결은 오는 11월 1일에 나온다. 혜경씨는 고 김경미씨의 승소 판결이 자신의 재판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라고 있다.
반올림의 싸움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암, 뇌종양 등 난치병에 걸린 피해자들은 그 병이 가해오는 신체적 고통을 하루하루 견뎌내기도 힘들다. 그러나 상대인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싸우려한다.
반올림의 싸움은 사실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피해자인 노동자가 스스로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한다. 그래서 이 싸움은 길고 어렵다. 황상기씨가 딸 황유미씨의 죽음이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강한 의심을 안고 반올림을 찾은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기업과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은 사실을 다루는 데 여전히 지나치게 엄격하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지난 18일 나온 고 김경미씨에 대한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지 단 8개월 만에 나왔다. 판결 이유 중에는 반올림에서 그간 숱하게 외쳤던 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망인의 발암물질 또는 발암의심물질에의 노출 여부 및 그 정도를 더 이상 규명할 수 없게 된 것은, 일정 기간의 잠복기를 가지는 백혈병의 특성과 더불어, 망인의 근무 당시 사용된 화학물질에 대한 자료를 보존하지 않거나 일부 자료에 대해서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는 삼성전자에게도 그 원인이 있음. 이처럼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하여 노출된 유해물질에 대한 파악이 어렵게 된 이 사건에 있어, 업무기인성에 대한 높은 정도의 증명책임을 근로자 측에게 부담시킬 수 없음." 증명할 수 없으면 불인정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부담시켰던 것에서 한발 나간 판결이다.
고 김경미씨는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화학물질이 담긴 수조에 반도체 웨이퍼를 담갔다가 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가 했던 작업과 유사하다. 반올림은 황유미씨와 이숙영씨에 대한 1심 승소 판결이 김경미씨의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황상기씨는 제보를 주저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직접 나서서 싸우면 누군가가 도와줄 순 있지만, 누군가가 대신 싸워줄 수는 없습니다. 진실을 함께 밝혀나간다면 힘이 덜 들고 빨리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사실을 밝힐 자료도 능력도 부족하다. 진실을 밝혀내려는 의지가 있을뿐이다. 이 싸움에 많은 이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반올림은 제보와 상담을 기다린다. 또한 지지와 연대의 마음, 현실적 참여, 재정적 후원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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