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수가... "조국통일 만세!" 크게 외쳤습니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⑦] 북한서 본 백두산 천지, 이 정도일 줄이야

등록 2013.11.07 13:44수정 2013.11.0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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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기쁨만이 가득할 것만 같았던 수양딸 설경이와의 재회!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허전하고 애달프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수양딸 설경이의 신혼집을 방문할 수만 있다면 이번 여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기쁜 여행'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설경이의 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큰 그리움에 빠져들었다. 우울한 감정 또한 사그라지지 않는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북한 여행은 '아름답지만 슬플 수밖에 없는 여행'일 것 같다.

이산가족의 상봉을 간절히 기원한다

 해외동포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평양 고려호텔에서)
해외동포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평양 고려호텔에서)신은미

문득 남과 북에 있는 이산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죄스럽다. 피를 나눈 혈육들이 상봉은커녕 생사조차 모른 채 한 분 두 분 한 많은 삶을 마치고 있다. 해외동포들은(하다못해 나 같은 '양엄마' 마저도) 원한다면 누구든지 북한에 가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는데, 왜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서신조차 주고받지 못하는 걸까.

나는 첫 북한여행 이후 통일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전공인 음악에 관한 책을 놓은 지 꽤 오래인 내가 통일과 관련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남북관계·북미관계·새터민 등 단어만 떠올려도 머리가 아프고 졸음부터 올 것이라 생각했던 통일 관련 글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역시 관심이 있으니 흥미가 생기나 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왜 남북관계는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북미 평화협정은 왜 체결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남한의 보수정권과 미국의 대북정책에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북한은 곧 붕괴한다'는 가정 아래 그들의 정책이 수립됐다는 점이다.

그간 나는 북미관계에 있어서 북한이 항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이 지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으며, 심지어 부시 행정부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미국은 마치 축구 경기 도중 불리해지자 골대의 위치를 바꾼 격"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까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제프리 베이더는 "한마디로 전략적 인내라는 미국의 대북정책은 곧 북한이 붕괴할 때를 기다리며 지연작전을 펴는 것이었다"고 그의 저서 <Obama and China's Rise>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 북한의 붕괴가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여러 가지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미국 입장에서는 정책의 실패를 맛봤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정책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는커녕 북한은 핵무장을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남한의 보수정권 역시 '북한 지원을 끊으면 그들은 몇 년 안에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동시에 북한의 개방도 요구한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이 개방 정책을 펴 잘사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보다는 개방으로 인한 북한의 체제변화 혹은 붕괴에 그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체제변화나 붕괴의 조짐이 없다면, '북한 정권의 붕괴'라는 가정 아래서 생겨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 지역 격차 물어봤더니...

북한 사회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 또한 객관적인 판단을 힘들게 한다. 대개 새터민들의 말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터민들이 남한에 와 내놓은 증언 중 북한에서의 궁핍한 생활이나 고난에 대한 증언은 상당수가 사실일 것이다. 나 역시 북한을 여행하는 도중, 그들의 가난을 수차례 봐왔다. 하지만, 일부 새터민들의 증언이 북한 사회 전체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라진-선봉을 여행하던 중 한 북한 주민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북에서 느낀 건데, 평양과 지방의 격차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생활 수준도 차이가 나는 것 같고…."

그러자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지방이 어떻게 평양과 같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수도의 시민은 그렇게 살 자격이 있습니다."

우연히 만난 이 북한 주민이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보통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듯) '누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라'는 교육을 받고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도리는 없다. 하지만, 만일 이 주민의 말이 진실이었다면 '과연 이런 사회가 생각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언론들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백만의 북한 주민들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북한은 붕괴했는가? 북한은 여전히 건재하며 붕괴할 기미는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당시 수백만의 인명 피해를 고려해 볼 때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새터민 수 2만5000명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면 아마도 수천만 명이 캐나다나 멕시코로 '탈미'할 것이다.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도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보고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연구를 통해 정책이 나와야 한다.

관광객 신분으로 북한을 본 내가 그 사회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북한은 아무리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해도 결코 일순간 와르르 붕괴될 것 같지는 않다. 한 사회가 붕괴될 때에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정신적인 타락이나 나태 혹은 침체가 먼저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본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혹 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지금의 북한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 눈에 비친 북한은 전 국토가 요새화돼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수백만 명이 결사항전을 벌이는, 한마디로 '빨치산 국가'(partisan state)였다.

얼마나 더 많은 북한 동포들이 죽어야 하나요

만약 북한에 가해진 경제제재마저 풀려 북한이 본격적으로 국제 경제에 참여하게 된다면, 붕괴는커녕 경제성장을 구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1960년대 남한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값싼 노동력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하곤 한다. 지금의 북한은 양질의 값싼 노동력은 물론이고 당시 남한이 갖고 있지 못했던 풍부한 지하자원 그리고 기술도 갖추고 있다. 경제대국이 된 남한조차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띄우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미 오래전에 그것을 성공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북한에도 기술이 있다는 이야기다. 남과 북이 대규모 경제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남한에게도 반드시 이득이 생길 것이다. 놀라운 경제 도약을 다시 한 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남과 북의 경제성장도 좋지만, 날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 진짜 이유는 남북 경제 협력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감격적인 상황 때문이다. 우리 민족, 남과 북이 비로소 마음을 합치고, 서로를 보듬어 안으며 살 길을 찾아 함께 나서는 역사적인 상황 말이다. 이 여행기를 읽는 이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이제 '좌빨' '수꼴' '종북' '반북' 같은 논할 가치 없는 무개념 단어들을 남발하지 말자.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통일'을 논하자. 그렇게 한다면 아름다운 겨레의 정신을 실천에 옮겨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리자.

누군가가 북한의 붕괴를 상상하고 있다면 묻고 싶다. '얼마나 더 많은 북한의 동포들이 목숨을 잃어야 북한이 붕괴된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오백만 명? 천만 명? 그렇게 많은 동포들이 죽어가며 얻는 '북한의 붕괴'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몇몇 사람들은 마치 북한이 붕괴되면, 남한이 이를 흡수해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북한은 유엔에 정식으로 가입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유엔 가입국이 다른 나라에 흡수되거나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북한의 붕괴가 통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북한의 경제발전이 통일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소위 '통일 비용'이라는 것도 남북간의 경제격차가 벌어지면 벌어질 수록 늘어날 게 뻔한 일 아니겠는가.

이제 '북한은 곧 붕괴할 것'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민족 그리고 통일을 바라보자. 대개 우리는 한민족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적인 경제 강국을 건설한 훌륭한 민족'이라고 소개한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그런 민족적 역량을 동일하게 지닌 사람들이다. 하루 빨리 남북관계가 좋아져서 가물에 콩 나듯 백여 명씩 만나는 이벤트성 이산가족 상봉이 아닌 수만 명이 대규모로 상봉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 정도면 금세기 최고의 휴먼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민족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설경이를 만나고 되돌아오는 시간 내내 안타까운 심정이 가시질 않는다. 양 갈래로 갈라진 내 조국의 서글픈 모습에 내 애절한 심정까지 더해지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뿜어져 나온다.

남한식 '폭탄주' 마신 영길 동생, 반응은?

 폭탄주를 만들기 위해 주문한 대동강 맥주와 송악소주
폭탄주를 만들기 위해 주문한 대동강 맥주와 송악소주신은미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식사 생각이 전혀 없다. 영길 동생은 남편에게 폭탄주가 뭔지 보여달라고 아까부터 졸라댄다. 우리는 저녁식사 대신 호텔 2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향한다. 남편은 대동강 맥주와 개성 특산물인 송악소주를 주문한다. 폭탄주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다. 호기심으로 가득찬 영길 동생이 폭탄주를 한 잔 들이키더니 남편에게 묻는다.

"형님, 긴데 맥주와 소주의 비율을 어케 해야하는 겁니까?"

남편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사실 나도 잘 몰라. 서울 가면 친구들이 만들어주는데 맛의 비결은 바로 그 비율에 있다고 하는구만. 또 섞을 때도 그냥 섞는 게 아니라 방법이 있다며 이래저래 보여주더군. 그런데 아마 맛의 비결은 바로 비율일 게야. 그나저나 맛이 어때? 돗수가 높다는 그 대동강 생맥주하고 비교해 보면 어때?"
"열심히 만들어주신 형님한텐 좀 미안한데…, 사실 상대가 안 됩니다. 대동강 생맥주가 훨씬 좋습니다."

하긴…. 술을 잘  못마시는 나도 대동강 맥주는 인정한다. 대동강 맥주를 마실 때마다 의문이 생기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공산국가에서는 국영기업들이 경쟁없이 상품을 독점 생산하기 때문에 품질이 좋을 수 없다'는 통념. 그런데 대동강 맥주를 보면 이 말이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빈 속에 폭탄주를 마신 남편이 객실로 돌아가 빨리 쉬고 싶은지 영길 동생에게 묻는다.

"영길이, 내일은 어디를 가나?"
"아, 형님도. 첫날 영어로 된 일정표를 드렸는데도 매일 저녁 물으시는구만요. 어쩐지 첫날 가스맥주를 고냥 들이키시드만 일정표는 오따 팽개쳐 버리시구서리…."

설향이 말에 따르면, 내일부터는 평양을 떠나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칠보산이 있는 함경북도 그리고 마전해수욕장, 함흥·흥남이 있는 함경남도로 며칠간 여행을 간단다. 우리는 일찌감치 방으로 올라갔다. 잠을 청하려 뒤척여 보지만, 설경이와 신혼집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붐비는 공항청사... "이게 다 백두산 가는 사람들이야?"

 러시아산 AN 24 비행기에 오르기전 설향이와 함께
러시아산 AN 24 비행기에 오르기전 설향이와 함께신은미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가방을 챙겨 식당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웨이트리스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녀사님. 오늘 아침엔 녹두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앉아 계시면 제가 떠다 드리겠습니다."

 호텔에서 맛본 녹두죽
호텔에서 맛본 녹두죽신은미

오늘도 뷔페에는 조선식 반찬이 곁들여져 있다. 북어포를 가늘게 찢어 깔끔하게 양념한 북어무침이 녹두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오이지무침과 함께 개운한 아침식사를 했다. 로비에 가니 설향이와 영길 동생이 백두산 천지에서 먹을 '벤또'와 음료수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 설향이에게 짐을 들고 있게 해 핀잔을 들은 영길 동생이 당당하게 큰소리친다.

"형님! 형님 드실 맥주가 들어있는, 제일 무거운 이 구럭지(비닐봉지)를 제가 들고 있시요. 이제 됐습니까?"

 순안공항의 전광판
순안공항의 전광판신은미

우리는 차에 올라 순안공항으로 향한다. 공항 주차장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많은 차들로 가득하다. 공항청사에 들어서서 전광판을 보니 백두산으로 향하는 삼지연행 비행기가 세 대, 그리고 북경행 비행기가 한 대 있다. 1시간 10분 사이에 넉 대의 비행기가 출발하니 임시 공항청사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남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영길 동생에게 묻는다.

"아니, 백두산가는 관광객들이 이렇게 많아? 이게 웬일이야?"
"형님, 오늘도 어제처럼 역사적인 날이야요. 처음으로 우리 인민들이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 관광을 가는 거야요. 그동안은 외국인 관광객들만 비행기를 타고 국내 관광을 했드랬는데, 오늘부터는 우리 인민들도 비행기타고 단체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디요. 오늘 첫 운항을 시작하는 거야요."

"그럼 이제부터는 누구나 원하면 비행기 타고 백두산에 갈 수 있는 건가?"
"순서대로 가디요."
"순서대로? 그러면 오늘 첫 운항하는 비행기 타고 백두산 관광 가는 저 사람들은 누구야?"
"각 기업소에서 모범적인 노동자들을 선별해서리 그 가족들을 비행기 태워 백두산으로 단체관광시켜 주는 겁니다."

오늘 아침 삼지연으로 떠나는 석 대의 비행기 중에서 한 대는 국내 관광객을 위한 비행기였다. 그래서 공항도 붐볐던 것.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가족들의 모습이 이른 아침부터 눈에 많이 들어온다.

 기내에서 평양타임즈를 읽고 있는 설향이
기내에서 평양타임즈를 읽고 있는 설향이신은미

이번 백두산 행에는 영길 동생과 철남 동생은 함께 가지 않고 설향이만 동행한다. 영길 동생과 철남 동생은 백두산·칠보산 관광을 마치면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선덕비행장으로 우리를 마중 나온단다.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철남 동생과 영길 동생이 차를 몰고 온단다. 남편이 헤어짐에 앞서 인사를 건넨다.

"잘들 지내고 있어. 며칠 집에 못 갔을 테니 집에 들어가서 푹 쉬고…. 가족들에게도 잘해주고. 특히 아내한테 잘해줘."

철남 동생이 말한다.

"안 기래도 매일마다 아빠 언제 오냐고 전화하는 딸래미 보고파서리 곧바로 집에 들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리발도 하고 멋진 모습으로 마중 나가겠습니다. 재미있게 지내시다 오시라요."

영길 동생은 그새 질투를 한다.

"예쁜 딸래미 설향이만 다리고 즐거운 가족여행 되시갔구만요. 꼴 뵈기 싫은 이 동생은 떼버려 놓고 시리…."

운 따라야 볼 수 있다는 천지... 오늘은 볼 수 있을까

 안내 방송을 하는 영어 안내원 방은미
안내 방송을 하는 영어 안내원 방은미신은미

오늘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AN 24라는 작은 러시아산 프로펠러 비행기다. 오래돼 보이긴 하지만, 지난해 5월에 이보다 조금 더 큰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어 그리 겁이 나진 않는다. 되레 흥분되고 기대된다. 이륙할 때 사뿐히 떠오르는 느낌은 평소 제트비행기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기분 좋았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북녘의 산하에는 빈 땅이 하나도 없다. 해발 몇 미터가 되는 산들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은 온통 밭으로 경작하고 있다. 그야말로 식량 증산에 '혁명적 사활을 건다'는 북한 동포들의 노력을 실감한다.

우리는 비행기 속 유럽 관광객들과 한 팀이 돼 며칠간 함께 여행하기로 돼 있다. 유럽의 어떤 여배우를 떠올리게 하는 독일어 안내원 오수련, 어려서 노래를 전공했다는 애교쟁이 영어 안내원 방은미, 매너 좋고 점잖은 스페인어 안내원 김광혁 그리고 김일성대 일본어과 4학년이라는 수줍음 많은 여학생이 실습 차 나와 함께 탑승했다.

실습생을 제외한 나머지 안내원들은 예전 방문 때도 봤기 때문에 친숙하다. 특히 애교쟁이 방은미는 설경이 친구인데다 나와 이름도 같아 오래전부터 마음을 트고 정을 나눈 사이다. 우리 팀들에게 안내방송을 할 때는 영어 안내원인 방은미가 영어로 얘기하면, 이를 전해 들은 안내원들이 각자 맡은 관광객들에게 스페인어나 독일어로 통역을 한다.

 백두산이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백두산이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신은미

한 시간 남짓한 비행 시간 동안 나는 백두산 천지를 상상 속으로 그려본다. 지난 2012년 5월, 천지를 눈앞에 두고도 길이 얼어붙어 올라갈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오늘은 천지를 볼 수 있을는지…. 가슴 졸이며 간절히 바라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천지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인 8월에 백두산을 방문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1년에 30여일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천지의 날씨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단다. 천지는 운이 따라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삼지연 공항에 내린 우리 일행은 곧장 백두산으로 향한다. 운전기사는 "그동안 날씨가 안좋아 천지를 볼 수 없었는데 이틀 전부터 괜찮아졌다"고 말해준다. 오늘 가면 천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는다.

멀리 백두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그러자 갑자기 파란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이며 백두산을 가리고 만다. "아…, 이를 어쩌나!"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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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미

북한이 외국인에게 관광을 개방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오래전, 나는 천지를 보기 위해 중국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그 계획을 포기했다. 중국 땅에서 천지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태운 차가 백두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부터 우리는 괘도 차량을 타고 백두산 정상으로 올라간단다. 레일이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잠깐 사이 또 구름이 정상을 가린다. 종착역이 가까워지자 심장 박동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내 나라 땅에서 본 천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조국통일 만세! 통일조국 만세!"

 행군을 마친 항일 빨치산 복장의 여대생들
행군을 마친 항일 빨치산 복장의 여대생들신은미

 항일 빨치산을 그린 모자이크 벽화
항일 빨치산을 그린 모자이크 벽화신은미

차량에서 내리면 천지가 바로 눈앞에 확 펼쳐질 거라 상상했는데, 아니다. 비스듬한 들판만 보인다. 그 비스듬한 들판을 따라 항일 빨치산 복장을 한 여대생들이 커다란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일렬로 걸어가고 있다.

"설향아. 저 행진하는 학생들은 누구야?"
"사적지 답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적지 답사? 그럼 너도 학생 때 저 아이들처럼 사적지 답사 다녔어?"
"그라믄요. 학년 때마다 사적지 답사 여행을 이곳저곳으로 떠나는데 힘은 들지만 동무들끼리 재미나기도 하고 답사여행을 마치고 나면 매우 뿌듯하기도 합니다. 제가 백두산으로 답사 여행 왔을 때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날씨도 추웠습니다. 장시간을 기차 타다 걷다 하면서 힘들게 왔는데 천지를 못봐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혁명의 성지를 답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뭇했습니다. 그때 동무들과 추억도 많이 만들었구요."

설향이가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든다. 저들도 두 손을 들어 힘껏 손을 흔들어 답례한다. 행군하는 모습이 마치 북한 텔레비전에서 본 항일 빨치산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다른 한쪽에서는 붉은 머플러를 두른 중학생들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걸쳐 입은 점퍼도 대부분 붉은색이다. 북한동포들이 백두산을 '혁명의 성지'라고 부른다던데,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백두산 정상은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다. "우리는 항일의 역사를 배우며 자라납니다"라고 한 설경이의 말이 또다시 떠오른다.

 천지에 도착하여
천지에 도착하여신은미


쇠사슬로 둘러 쌓여 있는 꼭대기에 다 가서야 천지가 온몸을 보여줬다.

"아, 태초의 지구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수십억 년 전으로 돌아간다. 만물이 창조되는 현장에 내가 서 있다. 흙을 빚어 모양을 내고 불을 뿜어 굽는다. 불구멍을 물로 채우고 바람을 일으켜 생명을 불어넣자 새가 날고 물고기가 헤엄친다. 흐뭇한 신은 "아, 보기에 좋았더라!"라고 속삭인다.

여기,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으니,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 겨레 아니겠는가. 천지를 보며 남편과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조국통일 만세! 조국통일 만세! 통일조국 만세!"


#북한 #백두산 #통일 #평양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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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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