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평택으로 돌아가기 전 대한문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문기주, 복기성씨(오른쪽부터)는 "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멈추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삶이 평화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희훈
"'노동자들에게 대한문은 새로운 성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쌍용차 형제들이 '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멈추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삶이 평화를 얻었다'고 고백했을 때 참으로 기쁘고 고마웠지요."서울에 첫눈이 내렸던 지난 11월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4월초, 쌍용차에 있던 분향소가 기습 철거 당한 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주관해 하루도 빠짐없이 열린 미사였다. 사제단 소속이 아닌 신부들도 적지 않게 참여했다.
마이크를 잡은 기폴 안드레아 수녀는 "대한문 미사에서 처음 마주한 건 쌍용차 형제들의 희망 없는 눈빛, 상처 입은 이들의 이글거리는 분노였다"고 말했다. '225일 미사'가 끝난 지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모습은 달라졌을까.
지난 22일 오후 대한문 근처에서 문기주(54·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정비지회장), 복기성(38·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고동민(39·대외협력실장)씨를 만났다. 일정이 안 맞은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매일 미사는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평온함을 주는 안식처였다"고 말했다.
함께 한 450여 시간... "신부님은 내 유치소 동기""처음 대한문으로 온 이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투쟁한다는 이유만으로 낮부터 끊임없이 연행되고 끌려가는, 온갖 인격모독과 욕설이 날아드는 상황에서 경찰이 유일하게 우리를 놔두는 게 그 시간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마음에 평온해지는 미사가 기다려지더라고요. 저는 무교인데 이제 성가곡도 다 외워요." (김득중 지부장) 225일 간, 매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 2시간 정도 계속된 미사. 이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천주교 신부·신자들이 해고자들과 함께 한 시간은 약 450시간에 달한다. 미사가 끝난 후에는 근처 식당으로 함께 가 "뜨끈한 국밥과 쐬주 한 잔"을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7월에는 700여명이 대한문에서 함께 노숙을 하며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고, 8월에는 전국 천주교 사제와 신부 등 5038인이 쌍용차 사태 해결을 염원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강론을 맡았던 하춘수 신부(마산교구)는 "아마 한국천주교 역사 이래 가장 많은 분들이 동참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