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제서원은 처음에는 홍복사(洪福祠)였으나 1747년 홍지암(洪池庵)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891년 중수하면서 모원재(慕遠齋)로 개칭하여 남양 홍씨 문중의 재실로 사용해왔다. 1976년 영남유림들이 광제서원으로 격상시켰다.
김종신
홍씨는 "더러 여기 구경하러 옵니다"라며 스스로 광제서원을 안내에 나섰다. 서원은 처음에는 홍복사(洪福祠)였으나 1747년 홍지암(洪池庵)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891년 중수하면서 모원재(慕遠齋)로 개칭하여 남양 홍씨 문중의 재실로 사용해왔다. 1976년 영남유림들이 광제서원으로 격상시켜 해마다 음력 3월 10일 고려은청광록대부 상서 홍의(洪毅)와 고려금자광록대부 수상공상서 보문각, 태학사 홍관(洪灌)에게 춘향(春享)을 올린다.
목조건물은 고려 초기의 건축 형태를 잘 보여 준다. 덕분에 서원 곳곳을 구경했다. 구경을 마치고 나서는 데 홍호연 선생에 관한 동화책을 선물로 받았다. 홍호연 선생은 (조선은 임진왜란이라 애써 낮춰 불렀지만)동북아국제전쟁 때 2차 진주성 싸움에서 12세에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서 유학과 글씨를 가르쳤다고 한다.
선생의 후손들은 지금도 홍(洪)씨 성을 쓰고 있다. 몇 년 전 일본에 있는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남양 홍씨 사람들을 420년 만에 만났다. 실로 420년만의 귀환이다. 차를 세워둔 은행나무 앞으로 다가서니 슬며시 이끈다. 비닐하우스에서 메주가 익어가고 있었다. 진해에 있는 아내와 함께 만들어 내다판다고 한다. 낯선 사람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다.
길 돌아 10여 분. '토종 100% 국산 소나무 숲길'이라는 광제산 등산로를 알리는 선간판이 보인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땔감으로 우리 소나무가 사라졌다. 미국에서 빨리 자라는 리기다소나무를 들여와 토종 소나무 빈자리를 대신했다. 이곳에는 물 건너 소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었나 보다. 광제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2004년 무너진 돌무더기를 이용하여 원형대로 복원함으로써 전국에서도 원형이 살아있는 몇 안 되는 봉수대다. 지리산과 삼천포 와룡산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