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러들은 대부분 오지 잡은 텍스 잡(Tax Job), 한인 잡은 캐시 잡(Cash Job)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고용주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데, 한인 잡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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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미씨가 한인 셰어하우스에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시급 11호주달러밖에 받지 못하는 한인 잡을 택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호주에 도착한 지 3주 만에 겨우 한인 잡을 구했다.
이곳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한인 잡', 호주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을 '오지 잡(Aussie Job)'이라고 부른다. 오지 잡을 구하려면 기본적인 영어가 돼야 하기 때문에, 호주에 처음 도착한 워홀러들은 오지 잡을 구하는 데 실패하고 한인 잡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
워홀러들은 대부분 오지 잡은 텍스 잡(Tax Job), 한인 잡은 캐시 잡(Cash Job)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고용주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데, 한인 잡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또한 캐시 잡은 법외 고용인만큼 자연스레 최저 임금 기준 이하의 시급을 준다. 2013년 7월 1일부터 적용된 호주 만 20세 이상 성인의 최저 시급은 16.37호주달러지만, 신씨는 최저시급의 2/3 정도를 받고 한인 고용주 밑에서 일했다. 당연히 현금 박치기를 하는 캐시 잡이었다.
한인 잡→ 한인 렌트→ 한국어만 쓰는 환경시티에 살던 신수미씨는 박스힐(Box Hill)에 있는 한식당에서 일했다. 시티에서 박스힐까지 하루 교통비만 약 12호주달러였지만, 박스힐은 한국인·중국인 등 동양인이 많이 사는 동네라 한인 잡이 비교적 많은 곳이었다. 시급 11호주달러를 받으며 주 28시간을 일해, 한 주에 약 310호주달러를 벌었다. 여기에 방값 150호주달러, 교통비 60호주달러 등 총 210호주달러를 내면 신씨 손에 남는 돈은 100호주달러였다.
이곳에서는 햄버거 세트가 8호주달러, 커피 한 잔이 5호주달러다. 남은 100호주달러는 한 주 생활비로 쓰기 빠듯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인 셰어하우스가 아닌 다른 집에 살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신수미씨는 "오지 잡을 구하기가 힘들어 한인 잡을 하면 수입이 적고, 그러다 보면 값이 싼 한인 렌트밖에 갈 곳이 없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기 마련이다.
렌트를 돌리는 사람 중에는 워홀러도 더러 있다. 정희영씨도, 신수미씨도 워홀러가 렌트를 돌리는 집에 살았다. 신수미씨가 두 번째로 산 집의 마스터도 20대 중반 한인 남성이었다. 그는 "어차피 잘 맞지도 않는데(호주생활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은데) 이제 그냥 돈이나 많이 벌어갈까 싶다"며 밤새 마트 청소를 하고, 렌트를 돌려 돈을 모았다. 호주에 와서 청소일을 하고 있는 한인이 많아, 알음알음 소개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운동경기장 청소를 하던 박희진(21·여)씨도 "호주에서 알게 된 한인을 통해 청소일을 찾았다"며 "업무 지시도 한국어로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소 일자리를 일단 구하기만 하면 영어를 못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스터는 밤새 마트 청소를 하고 아침에 집에 와 TV를 보다가 낮에 잤다. 그리고는 밤에는 다시 일하러 가는 생활이었다. 그는 사람을 만나거나 영어실력을 향상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 한국에 돌아가는 게 그의 목적이 됐다.
영어실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호주에 온 워홀러들도, 말이 트이지 않으면 '꿈꿨던 삶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영어가 어눌하면 일을 구하기가 힘들다. 최저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써줄 곳이 있으면 기꺼이 가서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수입이 적어지고, 그 수입을 주세를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한 집을 찾게 된다. 결국 이런 이들이 찾는 곳은 불법 렌트다. 자연스레 매일 한국어를 쓰는 상황에서 살게 되고 영어를 쓸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이것이 언어 장벽이 있는 워홀러가 경험하는 '악순환의 고리'다. 호주를 기회의 땅이라 믿고 왔지만, 그 기회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이 반복된다. '바다'가 '우물'인 줄 알면서도 '호주 바다'에서 생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게 이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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