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유학생들 이렇게 사는 거, 부모님이 아시면...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실태③] 호주 딸기농장 셰어하우스, 직접 살아보니

등록 2014.02.19 14:30수정 2014.02.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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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호주 브리즈번에서 한인 세 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사망자 셋 모두 한국인 '워홀러'였다. '워홀러'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등 외국에 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망 사유는 모두 달랐지만,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실태가 이슈화됐다. 영어권 나라 중 캐나다·뉴질랜드·아일랜드 등도 우리나라와 청년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지만, 호주는 비자 발급 절차가 간단해 한국청년들이 특히 많이 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멜버른(Melbourne)에 와 있지만 소위 '워홀러'라고 불리는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회사 동료, 프로젝트를 통해 만났던 한국 출신들은 국적이 호주나 뉴질랜드여서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었다. 살던 동네에도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시티'(City)라고 부르는 시내 중심가에 나갔을 때, 그곳을 동네 주민처럼 다니면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20대 초반 사람들을 보면 '워홀러인가 보다' 하고 추측하는 게 전부였다. 진짜배기 한국인 워홀러가 호주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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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셰어하우스의 앞마당이다. 이 광경을 본 인터넷 설치 기사는 "빠질 것 같아, 어떻게 이렇게 하고 살아?"(It's about to sink. How can you live like this?)라고 말했다. ⓒ 이애라


2013년 12월 26일 호주 공휴일인 박싱데이(Boxing day) 저녁,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을 안은 채 나와 내 친언니가 일하기로 한 딸기농장의 셰어하우스(Share house)로 향했다(관련기사 : 알바 월급 450만원? '복권'에 당첨됐다). 그곳에 도착하자 우리는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셰어하우스의 앞마당과 뒷마당은 풀이 무릎까지 올라올 만큼 무성했다. 보통 호주의 가정집은 집에 잔디 깎는 기계를 두고 직접 손보거나, 주기적으로 가드너(Gardener)를 불러 마당을 관리한다. 하지만 이 셰어하우스는 그런 관리 따위는 없었다. 이 집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2주일 가량 됐을 때, 호주인 인터넷 설치 기사가 셰어하우스에 방문했다. 그는 "왜 잔디를 안 깎아요? 보아하니 세입자 같은데, 집주인이 보면 화내겠어요, 이상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 세 칸 있는 집에 식구는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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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이 살고 있는 집 현관이다. 신발장에는 수납 공간이 부족했다. ⓒ 이애라


우리가 살아야 하는 셰어하우스는 오래된 주택 건물이었다. 집에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식 전화선에 변환기를 연결해야만 했다. 숙소 입구에는 서른 켤레 정도의 신발들이 널려 있었다.

이 작은 집에 한국인 10명, 대만인 2명이 살고 있었다. 우리와 통화한 슈퍼바이저는 거실, 주방, 화장실 하나, 샤워실 하나 그리고 방 세 개인 집을 "15명이 살 집"으로 소개했다. 우리는 이런 집에 도착해 슈퍼바이저로부터 단촐한 간이영수증을 받았다. 계약서 같은 것은 없었다.


싱글 침대 하나와 장롱 하나를 넣으면 꽉 찰 것 같은 크기의 방은 3~4인실로 활용되고 있었다. 세 방에는 각각 남자 3명, 여자 3명, 여자 4명이 살았다. 나머지 2명은? 거실에서 지냈다. 거실 중간에 책장을 놓고 이를 칸막이 삼아 방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칸막이 반대쪽에 "3명을 더 받을 예정"이란다. 25평형 아파트 정도 되는 곳에 12명이 있으니 집은 늘 복작복작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여행객이다 보니 한 사람당 짐은 캐리어 두 개에 배낭 하나가 기본이었다. 이 집에 산 지 2주 정도 됐다는 최지민(18)씨는 "매일 수련회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침대 사용'은 특별한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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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3인실의 모습이다. 방바닥에 침낭 세 개를 깔면 가득 차는 크기다. ⓒ 이애라


방에는 매트리스 같은 필수품은 없었다. 하지만, 셰어하우스 거실에는 새 식구를 더 받기 위한 매트리스가 준비돼 있었다. "왜 다른 방에는 매트리스를 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슈퍼바이저는 이렇게 답했다.

"거실은 공용 공간이잖아요. 그러니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다른 혜택을 줘야지요."

물론 이 집에 딸린 세 방은 싱글용 매트리스 서너 개를 넣고 지낼 크기도 되지 않았다. 방은 카펫으로 된 방바닥 위에 행거 하나와 4단짜리 옷 수납장만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우리가 지낼 방에 들어갔다. 4인실로 분류된 방이었다. 먼저 들어와 있던 두 여성 워커(노동자)의 커다란 이민 가방 두 개를 비롯한 짐들이 한쪽 벽면 전체에 널려 있었다. 우리 짐까지 두고 잘 생각을 하니…, 옆으로 '나란히' 자야겠다는 견적이 나왔다. 입실 생활을 하는 호주 집에 보일러가 있을 리는 만무했고, 방에는 냉난방 시설이 따로 없었다. 작동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실에 있는 난로가 이 집 난방 시설의 전부였다.

입식으로 지어진 집에서 우리는 좌식 또는 와식 생활을 했다. 침대·책상·의자 등 가구가 없기에 자연스럽게 바닥에 붙어 지냈다. 컴퓨터를 할 때도 우리는 나란히 바닥에 누웠다. 셰어하우스에 온 지 3일째라는 정희영(21)씨도 "호주에서 침대 없는 집에 처음 살아 본다"면서 "카펫 위에 이불을 깔고 자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새벽에 일을 나가는 여성 워커들이 "너무 추워서 자다가 몇 번이나 깼다"고 하면, 슈퍼바이저는 "뭐가 춥냐"며 핀잔을 줬다.

"친구는 한국인만 데려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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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셰어하우스 뒷마당이다. 창고 문짝은 떨어져 있고, 풀은 무성하게 자라있다. ⓒ 이애라


"집에 오지(Aussie, 오스트레일리아인)나 다른 나라 친구들을 데려오시면 안 돼요. 한국인은 괜찮아요."

슈퍼바이저는 친구 초대 허용 기준을 위와 같이 제시했다. 보통 다른 셰어하우스도 게스트(손님) 관련 규정이 계약에 포함된다. 대개 '저녁 O시 이후에는 손님이 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고 갈 수는 없다' 정도로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셰어하우스에는 인종·국적 제약이 있었다. 슈퍼바이저는 그 이유를 "인스펙션(Inspection, 집주인이 집을 세준 뒤, 세입자가 집을 계약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적의 친구를 초청했을 때, 셰어하우스 규정보다 많은 인원이 거주하는 것이 신고될 수 있음을 염려한 것이었다.

슈퍼바이저는 "인스펙션 나와서 걸리면 한 사람당 벌금이 1000 호주달러가 넘는다"면서 "예전에 브리즈번에서 어떤 집이 그렇게 되는 걸 봤다, 현지인은 절대 초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원래 12명이 살면 안 되는 집인지 물어봤다. 슈퍼바이저는 "네, 뭐 그런 거죠. 근데 농장 셰어하우스들은 다 그래요"라고 답했다. 슈퍼바이저는 수용 기준을 초과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일의 상황을 염려에 처음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운동화는 차고에 두세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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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적어보이기 위해, 작업할 때 신은 신발은 차고에 보관해야 했다. ⓒ 이애라


우리는 일을 마치고 오면 으레 가라지(Garage, 차고) 문을 열어야 했다. 주차 때문이 아니었다. 신발 보관을 위해서였다. 이 셰어하우스에 사는 이들은 일할 때 신은 운동화를 차고에 벗어뒀다. 사는 이가 열두 명이니, 운동화를 비롯해 장화 등 작업용 신발만 열두 켤레. 슈퍼바이저는 "신발이 많으면 사람 많은 집 같아 보인다"며 차고에 신발을 보관할 것을 알렸다. 그에게 '사람이 많다'는 건 숨겨야 할 사실이었다.

세컨드 비자를 따기 위해 농장에 찾아 들어온 워커들은 불법 셰어하우스에서 계약서도 없이 살았다. 농장 셰어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인간답게 살 만한 곳이어야 했다.

12명이 좁은 방 세 칸이 있는 집에 살기란 무리였다. 이 집에 사는 사람 중에는 셰어하우스에 대한 정보도 없이 몇백 불을 들여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18세 고등학생도 있었다.

이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불법행위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련회보다도 못한 환경에서 88일을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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