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결혼식, 누구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예식장으로도 쓰이는 후생관, 접근성 문제 심각... 통로는 중앙계단 하나뿐

등록 2014.01.29 20:02수정 2014.01.2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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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본관과 국회의원회관 사이에 있는 국회 후생관. 국회 직원들의 생활편의를 위한 공간인 이곳은 국회 관계자들이 결혼식을 자주 올리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준공된 지 워낙 오래돼 시설이 많이 낙후됐지만 가격이 매우 저렴해 지난 3년간 380여 건의 웨딩마치가 울렸을 만큼 인기가 좋다.

결혼식은 후생관 2층에 마련된 전용공간에서 진행된다. 후생관 입구에서 보이는 중앙 계단은 2층으로 통하는 주 이동 통로다. 건물 오른편에 비상계단이 있긴 하지만 막아두고 쓰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예식이 열리는 주말과 공휴일에는 하루 최대 1000여 명의 인원이 이곳을 찾는데, 예식에 참여하려면 아동·임산부·노인·장애인을 막론하고 모두 중앙 계단만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 결혼식, 장애 있는 분은 밥만 먹고 돌아가야 했을 것"

 피로연장이 있는 1층에서 예식이 열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중간층 모습. 아래로 20개 넘는 계단이 더 있다. 예식에 참여하려면 아동, 임산부, 노인, 장애인을 막론하고 모두 이 계단만을 이용해야 한다.
피로연장이 있는 1층에서 예식이 열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중간층 모습. 아래로 20개 넘는 계단이 더 있다. 예식에 참여하려면 아동, 임산부, 노인, 장애인을 막론하고 모두 이 계단만을 이용해야 한다.이기태

국회의원동산에 있는 사랑재에서도 결혼식을 치를 수는 있다. 휠체어·유모차 등을 이용하는 교통약자들도 접근은 가능한데, 이곳은 야외 결혼식만 가능한 곳이어서 날씨·계절 등 환경적 제약이 따른다. 이런 이유로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사랑재를 찾는 이들은 후생관보다 훨씬 적다.

올봄 후생관에서 결혼식을 치를 계획인 A씨는 "일도 이쪽에서 하고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들어서 여기서 예식을 치르고 싶은데, 지금은 다른 예식장을 알아봐야 하나 크게 고민 중"이라며 "직접 찾아가서 자세히 보니 계단 말고는 1·2층을 오갈 방법이 없더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꼭 모셔야 하는 손님 중에는 몸이 불편한 분이 몇 분 있다"면서 "그런데 장소가 이러니 예식을 보러 오지 마시라고 할 수도 없고…, 다른 장소를 알아보자니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이곳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여했다는 한 시민은 "건물이 오래돼 마을회관 분위기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괜찮았지만, 사람도 많은데 계단으로만 이동해야 해서 굉장히 불편했다"며 "더군다나 피로연이 1층이 아닌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돼서 후생관 밖으로 나가 한참 걷느라 동선이 더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를 가진 분이 있었다면 예식은 못 보고 밥만 먹고 돌아갔어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사무처 측은 후생관 접근성을 개선하려는 계획이 전혀 없다. '현재 후생관 2층으로는 계단 말고는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회사무처 예식 담당자는 "후생관 리모델링 계획은 전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동 편의를 중점에 둔 리모델링은 없었다

 외부에서 바라본 국회 후생관 앞문. 간판에도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다.
외부에서 바라본 국회 후생관 앞문. 간판에도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다.이기태

사실 후생관의 시설 낙후 문제·접근성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몇 년 전 SSM 입점을 앞두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 등이 진행됐지만, 이동 편의를 중점에 둔 리모델링은 사실상 없었다. 17·18대 국회 때 이러한 문제를 들췄던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아래 무장애연대) 관계자는 "당시 장애인 국회의원들도 많고 하니 사무처에서 재건축해보겠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냥 말뿐이었다"고 꼬집었다.


국회 후생관은 국회 시설 중 유일하게 신분증 없이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서 공공시설이나 마찬가지인 건물이다. 하지만, 공공시설이라고 하기에는 여타 편의시설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국회 내 '미니 백화점'으로 불릴만큼 국회 직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지만 편의시설은 진입로에 설치된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 하나가 전부다.

이에 대해 무장애연대 관계자는 "국회 본관, 의원회관 등 시설이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거쳤음에도 편의시설이 충분히 설치되지 않았다, 후생관은 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건물이 오래됐다는 핑계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피해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실 측은 이러한 문제를 오래전부터 인지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실 측은 후생관 접근성 개선을 위한 건의를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2층에 예식장만 있는 게 아니라 물건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거나 건물 층수가 3~4층이라면 이 부분을 빨리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건물 자체에 특수성이 있다 보니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며 "운영위원회를 통한 건의나 감사 때 지적을 통해 후생관 접근성 개선을 이뤄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ibabynews.com)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국회 후생관 #국회의사당 결혼식 #국회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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