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자 광명시 홍보실장
김수한
한참 뒤 남자는 다시 여인을 찾아왔다. 마석 부근에서 기차가 탈선해서 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러 왔던 것. 남자는 철도공무원이었다. 그날 남자는 여인의 부탁을 받고 연착한 기차에 탄 어머니에게 도로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말을 전했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주일 뒤, 역에서 남자와 마주친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로 역전다방에서 차를 샀고, 남자는 '아저씨' 티를 냈는지 커피가 아닌 쌍화차를 주문했다. 첫 데이트에서 남자는 역시 청량리 588번지 골목 초입에 있는 중국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자고 여인을 이끌었다. 참으로 멋없는 남자였다.
"짜장면을 주문하는데 나는 짜장면을 먹기가 그래서 볶음밥을 시켰다."그런 남자가 서울에서 직장을 잘 다니고 있는 여인에게 공무원 시험공부를 권했던 것. 처녀는 순순히 공부를 했고, 1979년 7월에 청평군 외서면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공직생활인데 전 실장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천직인 것 같다"고 말한다.
79년은 지금과 근무환경이 엄청나게 달랐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여성은 남성들의 보조역할을 했다. 그건 전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은 더 보수적이었다.
"서무와 보조역할을 했다. 시골 면사무소에서 사환처럼 청소하고, 커피 타주고, 공문 만들면 타자치고. 아니 그 때는 타자기도 없어서 '가리방'이라고 해서 철필로 써서 등사로 밀었다. 심부름꾼이었고 청소하는 사람이었다."전 실장이 광명시청으로 발령을 받은 건 지난 81년, 광명시가 개청을 하면서다. 전 실장은 81년부터 지금까지 광명시와 역사를 같이 해 왔던 것. 어디가 논이며, 밭이었는지, 공동묘지였는지, 홍수가 나면 광명시가 어떻게 변했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단다.
'기획담당관실'로 발령난 최초의 여성... 담당계장 "여성이라 싫다"전 실장이 광명시 최초의 여성 홍보실장이지만, '최초의 여성'으로 발령이 난 것은 홍보실장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여성공무원들이 가는 자리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소위 '요직'이라는 곳은 여성의 몫이 아니었던 것. 지금도 그런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 실장이 '여성 홍보실장'이기 주목을 받는다는 자체가 '차별'이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실장은 광명시에서 최초로 '기획담당관실'로 발령을 받았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게 전 실장의 회고다. 기획담당관실은 주요 보직 가운데 하나다. 전 실장은 통계계로 발령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담당계장이 "여성이 오면 출장도 못 보내기 때문에 싫다"고 반대를 했단다. '여성은 출장도 못 보내고, 술도 못 마시고 늦게까지 일도 못 시킨다'는 이유였다.
"통계계에서 안 받겠다고 해서 과장님이 기획계 말단에 데려다 놨다. 지금도 하고 있는 정책 관련 일을 거기서 했다. 거기서 광명시 최초의 홍보책자를 만들었다."이런 이야기 끝에 꼭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경기도청에서 관련업무 때문에 전화가 왔다는 것. 전 실장이 전화를 받으니 여직원 말고 "담당직원을 바꾸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후 전 실장은 여성으로는 '최초'의 자리로 계속 발령이 났다. 광명시에서는 처음으로 토지관리계장을 했고, 용도계장(지금의 계약계), 기획계장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이효선 전 시장은 전 실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여성이 비서실장이 된 것은 광명시 개청 이래 처음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양기대 시장이 전인자 실장을 홍보실장으로 기용했다.
이와 관련, 전 실장은 "광명시는 다른 시·군에 비해 여성들을 요직에 빨리 기용한 앞선 자치단체"라며 "여성과 남성은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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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②] 전인자 광명시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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