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산 의병장 아들 전진규 씨와 며느리 양복례 씨
박도
일자무식꾼 머슴으로 살다 1910년 1월 전해산 의병장은 전남 광주에서 대구감옥소에 이감되어 박영근· 심남일· 오성술· 강무경과 함께 7월 18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이 순국하자 부인도 따라 극약을 마시고 자결하여, 쌍 상여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전해산 의병장 슬하에 후손이 없자 아우 기영의 둘째 아들 진규로 양자를 삼아 대를 이었다.
2007년 4월 4일, 나는 전해산 의병장 후손 전진규(89)를 서울 방화동 그분의 아들 아파트에서 만났다. 전진규씨는 노환으로 누워 있다가 마나님 부축을 받아 일어나 굳이 거실로 나와 쇼파에 앉았다. 고령으로 수전증이 있는데다가 언어장애까지 겹쳐 곁에서 손자며느님 도움으로 몇 마디 대담을 나눌 수 있었다.
"목숨 하나 이어온 것만도 다행이었어요."그리고 전전규 씨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배운 게 없어요. 국문(한글)도 못 깨친 무식꾼인데다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큰아버지(전해산 의병장)는 돌아가셨고, 부모조차 모두 일찍 여의어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어요."당신은 평생을 머슴으로 소작인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장가도 서른이 되도록 못 가 하는 수 없이 나이를 두 살 속여서 띠 동갑인 18세 처녀에게 갔다는 얘기에, 곁에 앉은 마나님은 "내가 속아서 시집갔다"고, 그때 신랑이 서른 된 총각인 줄 알았다면 가지 않았을 거라고, 60년 전 일을 회상하며 억울해 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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