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기념관
이민선
혁명군은 1894년 5월 31일, 전주를 점령한 이후, 정부와 전주화약(全州和約)을 맺고 폐정개혁안 12개조를 타협한 후 전라도 53군에 농민 자치기관이라 할 수 있는 집강소(執網所)를 세워 폐정개혁에 착수했다. 그 내용이 대단히 파격적이다.
해설이 곁들여 지면 체험 수준의 역사교육이
■폐정개혁안 |
1. 동학도는 정부와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2. 탐관오리는 그 죄상을 조사하여 엄히 다스린다. 3. 횡포한 부호를 엄히 징벌한다. 4. 불량한 유림과 양반무리를 징벌한다. 5.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앤다. 6. 7종의 천인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을 없앤다. 7. 청상과부는 개가를 허용한다. 8. 관리채용에는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9. 명목이 없는 잡세는 일절 폐지한다. 10. 왜와 통하는 자는 엄히 처벌한다. 11. 공사채는 물론하고 기왕의 것을 무효로 한다. 12.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分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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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는 조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대신 청과 왜 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혁명군을 토벌했다. 1894년 11월, 전남 순창에서 전봉준이 체포됨으로써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동학혁명 기념관에는 이러한 동학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사진과 함께 정리 돼 있어, 대충 훑어도 당시의 역사를 한눈에 꿸 수 있다. 거기에, 이윤영 관장의 화려한 해설이 곁들여 지면 '체험' 수준의 역사 교육이 이루어진다.
기념관에 머무른 시간은 30여분 남짓, 아주 짧은 시간이다. 글자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보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 그럴 수 없었다. 문을 늦게 연 것이 못내 미안했는지, 이윤성 관장은 바깥 출입문까지 따라 나와 배웅해 주었다. 그의 배웅을 받으며 닫힌 문 앞을 서성이며 쌓인 노여움을 말끔히 털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