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 1권 표지
민음사
학교 건물 2층에서 추락사한 학생의 이름은 나구라. 동급생들보다 키가 10cm가량 작고, 몸집도 왜소하며 귀엽게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왕따의 피해자가 되기 알맞은 조건이다.
죽은 나구라의 등에 생긴, 달포 전부터 최근까지 여럿으로부터 꼬집힌 흔적으로 추정되는 푸르거나 새까맣게 된 멍 자국들이 사망한 학생의 부모 가슴에 대못이 되어 박힌다.
저자는 나구라가 왕따의 피해자가 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나구라가 동급생들보다 심지어는 후배들보다도 체격이 왜소했기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구라는 마을의 상권을 장악한 포목점의 외아들. 그래서 그의 옷과 학용품은 지나칠 정도로 최고급이다.
동급생들에 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용돈도 지나치게 많다. 일반 학생들에게도 질시의 대상이 될뿐더러 불량 학생들의 타깃이 되는 건 당연하다. 또, 손이 귀한 집안의 아들인 경우,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하다 보면 사회성이 결여될 수 있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협동을 해야 하거나 도움을 줘야 할 때와 뭔가를 요청해야 할 때... 적절한 태도로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급생들 중 날라리로 등장하는 이노우에라는 아이는 야비하다. 저자는 '중학생은 잔인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이노우에는 나구라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제 것처럼 사용하고, 돈을 빼앗고,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는 데 문제는 이 녀석은 나구라를 때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구라를 시켜 여자 아이 중 아무나 걷어차고 오게 한다. 이 과정에서 나구라는 여자아이들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게 된다.
어쨌든 나구라가 추락사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네 명의 테니스부원들은 활달한 리더 겐타, 의협심이 강한 에이스케, 초등학교 때 집단 따돌림을 경험한 바 있는 비열한 후지타, 평범한 가네코 등이다. 이들은 운동부실 이층에서 은행나무 가지로 뛰어 내려가는 위험천만한 행동들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는 친구들이다.
왕따의 결과는 세인들의 눈엔 아주 간단한 기사 한 줄로 끝이 나지만, 그 과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가슴이 너무도 먹먹하다. 한 명한테 잘못한 일이 금세 친구들에게, 그 친구들에서 반 전체에, 또 학년 전체에 그리고 전교로 왜곡된 소문이 되어 퍼져버리는, 피해 당사자로서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대단히 잔인하고 조직적이어서 어른이 보기에도 섬뜩하다. '평범한데도 경험과 상식이 없다는 점이 소년 범죄의 비극이다. 저지르고 난 뒤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했는지 깨닫는다'라는 저자의 논평이 와 닿는 이유다.
나구라의 부모가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글짓기를 하도록 학교에 부탁하는 이유 또한, 모든 학생들이 가해자라고 믿는 저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
기성세대는 중학생 시절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