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로 소년이 죽었지만... 현실은 이럴 수가

[리뷰]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

등록 2014.03.20 17:21수정 2014.03.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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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바타 시내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13)이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사인은 운동부실 2층 지붕에서 추락사. 하지만 그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직전까지 같이 있던 동급생 네 명이 숨진 남학생에 대한 상해 혐의로 체포, 상담소 송치되었지만 입건은 불발로 그쳤다. 학교 측은 집단 괴롭힘이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한 학생의 죽음이 작은 마을을 뒤흔들었다." (2권 136쪽)

<남쪽으로 튀어!>의 저자,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엔 '왕따(집단 괴롭힘)'라는 해결난망의 무거운 주제를 들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제목은 <침묵의 거리에서>.


위에 소개한 글은 이번 소설에서 다룬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사건 기사의 리드다. 소설은 저자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유머와 위트보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인물들 간의 갈등, 집단 이기주의 등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느낌이다.

왕따가 되는 과정

a  <침묵의 거리에서> 1권 표지

<침묵의 거리에서> 1권 표지 ⓒ 민음사

학교 건물 2층에서 추락사한 학생의 이름은 나구라. 동급생들보다 키가 10cm가량 작고, 몸집도 왜소하며 귀엽게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왕따의 피해자가 되기 알맞은 조건이다.

죽은 나구라의 등에 생긴, 달포 전부터 최근까지 여럿으로부터 꼬집힌 흔적으로 추정되는 푸르거나 새까맣게 된 멍 자국들이 사망한 학생의 부모 가슴에 대못이 되어 박힌다.

저자는 나구라가 왕따의 피해자가 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나구라가 동급생들보다 심지어는 후배들보다도 체격이 왜소했기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구라는 마을의 상권을 장악한 포목점의 외아들. 그래서 그의 옷과 학용품은 지나칠 정도로 최고급이다.


동급생들에 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용돈도 지나치게 많다. 일반 학생들에게도 질시의 대상이 될뿐더러 불량 학생들의 타깃이 되는 건 당연하다. 또, 손이 귀한 집안의 아들인 경우,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하다 보면 사회성이 결여될 수 있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협동을 해야 하거나 도움을 줘야 할 때와 뭔가를 요청해야 할 때... 적절한 태도로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급생들 중 날라리로 등장하는 이노우에라는 아이는 야비하다. 저자는 '중학생은 잔인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이노우에는 나구라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제 것처럼 사용하고, 돈을 빼앗고,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는 데 문제는 이 녀석은 나구라를 때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구라를 시켜 여자 아이 중 아무나 걷어차고 오게 한다. 이 과정에서 나구라는 여자아이들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게 된다.

어쨌든 나구라가 추락사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네 명의 테니스부원들은 활달한 리더 겐타, 의협심이 강한 에이스케, 초등학교 때 집단 따돌림을 경험한 바 있는 비열한 후지타, 평범한 가네코 등이다. 이들은 운동부실 이층에서 은행나무 가지로 뛰어 내려가는 위험천만한 행동들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는 친구들이다.

왕따의 결과는 세인들의 눈엔 아주 간단한 기사 한 줄로 끝이 나지만, 그 과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가슴이 너무도 먹먹하다. 한 명한테 잘못한 일이 금세 친구들에게, 그 친구들에서 반 전체에, 또 학년 전체에 그리고 전교로 왜곡된 소문이 되어 퍼져버리는, 피해 당사자로서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대단히 잔인하고 조직적이어서 어른이 보기에도 섬뜩하다. '평범한데도 경험과 상식이 없다는 점이 소년 범죄의 비극이다. 저지르고 난 뒤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했는지 깨닫는다'라는 저자의 논평이 와 닿는 이유다.

나구라의 부모가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글짓기를 하도록 학교에 부탁하는 이유 또한, 모든 학생들이 가해자라고 믿는 저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

기성세대는 중학생 시절을 기억하라


a  <침묵의 거리에서> 2권 표지

<침묵의 거리에서> 2권 표지 ⓒ 민음사

이제 나구라의 죽음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자.

겐타의 어머니인 게이코는 나구라가 자신의 아들인 겐타가 가끔 집으로 데리고 오던 친구 중 하나였기 때문에 놀라고 걱정하고 애도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죽은 소년이 아니라 아들이다.

겐타와 에이스케의 담임이기도 한 젊은 국어선생이지마는 나구라의 죽음보다 자신의 학생들이 처벌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스스로 태도를 깨닫고 체중이 4kg이나 빠질 정도로 자책한다.

교장과 교감은 유족의 입장에서 일 처리를 하느라 진땀을 빼고, 학생 주임은 초동 대응이 잘못됐다며 남아 있는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고, 학교의 위상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유족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유족들의 요구는 전교생에게 나구라의 죽음에 대한 글짓기를 시켜 달라는 것과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이 한 달에 한 번 나구라의 명복을 빌러 집으로 와달라는 것이다.

신문기자는 유족과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해 기사를 쓰느라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쓸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쓰지만, 모두로부터 자신들을 제대로 대변해 줬어야 한다는 질타를 받는다. 그나마도 지방신문은 지역에서의 분쟁에 끼어들지 말라는 방침 때문에 사건에 대한 기사 자체를 쓰지 못한다.

아이들을 취조하는 형사들과 검사는 '중학생과 마주하자 소년 사건이 얼마나 힘들고 복잡한지 실감했다. 아이들은 어휘력도 부족한 데다,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중요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도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어른들에게도 나구라의 죽음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국 한 덩어리다

왕따는 불량 학생들의 짓만이 아니다. 평범한 학생들도 작당하게 되면 잔인한 짐승들이 될 수 있다. 도대체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폭풍에 휩쓸려 지나가고 난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집 안에서와 집 밖에서 보이는 우리 아이의 모습이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는 일도 끔찍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오싹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판단이 미숙한 아이들에게는 재수 없으면 왕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모미가 느끼기에 남자애들은 학교생활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고 저자는설명하고 있다.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나약한 나구라는 죽고 말았다. 아직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르는 이 어린 소년의 죽음. 그를 가까이했던 부모나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가?

"한 학생이 끔찍하게 사망하지만, 친구들이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말이다. 교정엔 곧 제2의 나구라가 등장할 것이다.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던 나구라는 그의 어머니가 유산한, 그래서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그의 형과 동생에게 말을 걸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주변의 친구들이 보기엔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무도 인격적으로 상대해 주지 않으니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 것이다. 그렇게 더더욱 관계엔 맹꽁이가 되어 가는, 악의 순환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소설이 왕따 문제의 해결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왕따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게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보인다. 소설 <침묵의 거리에서>는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학생 당사자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덧붙이는 글 장편소설 <침묵의 거리에서> 총 2권,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2014년 2월 28일 1판 1쇄 펴냄, 민음사.

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민음사, 2014


#오쿠다 #침묵의 거리 #나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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